[부장칼럼]

프랑스에서 프랑스인 친구, 세드릭을 만나 같이 식사를 하게 됐다. 처음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는데 순간 ‘비쥬’를 해 당황했다. 비쥬는 프랑스식 인사로 상대방의 양 볼에 살짝 입맞추는 행위를 말한다. 세드릭은 우리가 프랑스로 대학탐방을 계획하고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줬다. 대학 선정을 위해 오랫동안 이메일을 주고 받았고 우리에게 관광을 시켜주는 등 많은 신경을 써줬다. 그래서 감사의 의미로 우리가 밥을 당연히 산다고 생각했다.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우리가 계산한다고 했더니 세드릭은 당황하면서 ‘더치페이’을 하자며 매우 불편해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Why?”라며 물음을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Why?”라는 질문은 끊임없었다. ‘샤를리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랑스로 떠났다. 숙대신보 기자였기에 샤를리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그는 우리의 생각을 계속 듣고 싶어하면서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계속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테러 사건 이전에도 샤를리 에브도는 본래 종교 관련 만평을 많이 그려 논란이 됐다. 천주교, 기독교, 유대교 등 여러 종교 관련 만평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대중들 사이에서도 샤를리 에브도는 인기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테러 사건으로 갑자기 샤를리 에브도는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투사처럼 보여졌다.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명목 하에 프랑스 시민들도 길거리에 나서며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를 외쳤다. 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를 그리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 그들의 교리다. 과연 무함마드를 만평에 그린 것이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는 것이 옳을까.

샤를리가 재발행하면서 부수가 40배로 늘었다. 언론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올바른 소리를 내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위협을 받아도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만 과연 상대방의 종교를 모욕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인지 의문이 든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 안되지 않을까.

문화부장 권나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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