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고3.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쓰러운 존재. 입시라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졸음과 분투해야 하고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대학만을 위해 달려야 하는 사람.

바로 작년, 나는 고3이었다. 문득 한 해를 돌이켜보니 참으로 치열하게도 살아왔던 것 같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EBS교재를 몇 번씩이나 풀고 또 풀고, 수많은 영어단어를 암기했다. 그 시간 다른 누군가는 논술이나 실기시험을 준비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 대한민국 고3은 오롯이 대학만을 위해 노력했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이름 모를 친구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 아파할 겨를도 없이 우린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보내온 1년 끝에 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고 졸업을 했다. 해방이라는 생각에 행복했고 스무 살이 된다는 것에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대의 마지막을 나는 어떻게 장식했나. 그리고 떠올렸다. 내게 ‘19살’은 없었구나.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19살은 수험생 또는 고3이었을 뿐이다. 누군가가 나이를 물어보면 ‘고3이에요’라고 대답했고 주변 어른들은 우리에게 힘내라며 위로해주었다. 돌이켜보면 19살은 고3이라는 이름에 묻히기에는 너무나도 의미있고 중요한 나이다. 매일 입던 교복, 전교생이 함께 먹었던 급식, 날 챙겨주시던 담임선생님과 매일 함께 수업을 들었던 짝꿍은 더이상 없다. 이제는 날 보호해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험난한 사회 속에 던져질 준비를 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이다. 하지만 우리는 19살을 살며 마지막인 것들과의 추억을 남겼던가. 사회에 던져질 준비를 해왔던가. 주체적인 삶에 대해 고민해보았던가. 나는 그 어떤 것에도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찬란한 ‘19살’이 아닌 치열한 고3을 보냈기에.

물론 그런 고3시절을 보냈기에 많은 좌절과 상처, 눈물 속에서 한층 더 성숙해지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고3이 친구들과의 여행,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 시간, 뜨거운 열정이 녹아있는 19살이었다면 조금 더 찬란했지 않았을까. 내 10대의 마지막에게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후회 없이 인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3’과 ‘19살’ 그 미묘하고도 큰 차이를 깨달은 지금. 나는 나의 십대가 씁쓸하다.

이소록(정치외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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