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과 자동차 매연으로만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도 고즈넉한 자연과 옛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왕과 왕족들이 머물던 고궁이다. 서울에는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이렇게 5개의 궁이 남아 5대 궁이라 불린다. 1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서울 5대 궁 통합 관람권을 들고 서울 고궁투어에 나섰다. 자동차 경적 소리를 뒤로하고 한가로이 궁궐을 거닐다 보면 숨어있던 옛 수도 한양의 모습이 고개를 든다. 시간마저 멈춘 것 같은 곳, 서울 5대 고궁에서 500년 전 조선을 마주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탁 트인 전망이 인상적인 광화문 광장, 크고 작은 빌딩 숲에 둘러싸인 이곳은 한양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육조거리가 있던 자리다. 육조거리는 당시 조선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육조 관서들이 광화문 앞에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다. 시끌벅적했던 당시 육조거리를 상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광화문 앞에 도착한다. 매표소와 각종 안내부스가 위치한 광화문 안쪽 흥례문 광장은 외국인 단체관광객들과 가족단위의 나들이객으로 북적거린다. 경복궁 개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입장은 오후 4시까지다(11~2월 기준). 본격적인 궁궐의 시작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흥례문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해야 한다. 성인 입장료는 3,000원,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볼 거리 배울 거리 많은 경복궁 나들이
입장권을 보여주고 흥례문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뒤쪽에서 나팔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수문장 교대의식이 잠시 후 3시부터 시작됩니다” 궁궐의 문을 지키던 수문장이 근무교대를 할 때 치르던 의식을 수문장 교대의식이라고 한다. 수문장을 뒤따르는 수문군의 절도 있는 모습과 흥겨운 음악으로 흥을 돋우는 취타대의 행렬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사진1)

수문장 교대의식이 끝난 후 본격적인 경복궁 관람에 나섰다.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인 흥례문, 1995년까지 흥례문이 있던 자리에는 조선총독부가 있었다. 아픈 과거를 지닌 흥례문을 지나면 금천을 가로지르는 영제교가 보인다.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법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물길이 흐르게 돼 있다. 경복궁은 궁궐 뒤쪽에는 북악산자락이 감싸고 앞쪽에는 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전인 근정전과 그 앞마당은 과거시험처럼 국가의 중대한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근정문을 지나면 근정전의 마당인 조정과 신하들의 자리를 지정해 주는 품계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중간에 살짝 튀어나온 길은 왕만 다니는 길로 어도라고 불린다. 근정전의 마당에는 화강암이 깔렸는데 고르지 않고 약간 울퉁불퉁하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실 것을 염려한 선조들의 지혜다.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어도를 따라 걷다 보면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내는 근정전에 다다른다. 그 규모와 정교함이 경복궁의 으뜸 전각으로 통하는 근정전은 눈여겨볼 요소가 많다. 먼저 화강암으로 건축된 이중기단 양옆의 동물조각들이 재미를 더해준다. 웅장한 규모의 근정전을 보다가 처마 밑에 그물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새들이 둥지를 틀거나 배설물을 남기지 못하도록 옛날부터 사용하던 방법이라고 한다. 또, 근정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내각 지붕 끝에는 동물모양의 기와가 있다.(사진2) 이러한 동물모양의 장식기와는 궁궐에 불이 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근정전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뚫려있고 천장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발톱이 7개 달린 용 두 마리가 조각돼 있다. 
 

1.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취타대가 음악을 연주중이다.
2. 궁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동물모양 장식기와
3. 강녕전의 지붕은 다른 전각과는 다르게 용마루가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근정전을 지나면 임금이 평소 집무를 보던 사정전(修政殿)이 나온다. 사정전이라는 이름에는 왕이 정사에 임할 때 깊이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특히 세종대왕은 매일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사정전에서 열리는 ‘상참’이라는 회의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한다. 사정전에서 왼쪽 문을 통해 빠져나오면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를 위해 지었던 집현전이 있던 자리인 수정전이 나온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렸던 집현전은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수정전으로 건립됐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군국기무처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수정전을 관람하던 중에도 계속 눈이 가는 건축물이 있었으니, 바로 연못 위에 지어진 경회루다.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즐기고 접대를 하던 곳답게 수려하고 웅장한 장관이 일품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돌기둥만 남은 경회루를 재건할 당시 청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에 넣어 물과 불을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연못 안에 있던 용 두 마리는 1997년 준설공사 중에 출토해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경회루와 관련된 사자성어도 있는데 바로 ‘흥청망청’이다. 연산군은 집권 당시 각 지방의 처녀들을 기생으로 뽑아 ‘흥청’이라고 칭했는데 이 흥청들을 모아 매일같이 경회루 등지에서 유흥을 즐기며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쫓겨나 죽음을 맞게 된 연산군을 보며 백성들은 ‘흥청’들과 놀아나다가 망했다는 뜻으로 흥청망청이라는 말을 썼다.
 

◆ 500년 조선의 역사가 한 곳에
궁궐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강녕전과 교태전이 나온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다른 내각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지붕의 꼭대기 부분에 씌우는 용마루가 없다는 점이다.(사진3)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왕이 용을 상징하기 때문에 왕이 머무는 건물에는 용마루를 올리지 않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왕비가 거처하던 교태전은 여성의 공간답게 공간 활용이 더욱 섬세하다. 교태전 뒤뜰에 자리 잡은 아미산은 경회루의 연못을 파낸 흙으로 쌓아올린 작은 인공 둔덕이다. 아미산에는 육각형의 굴뚝 4개가 있는데, 붉은색을 띠는 이 굴뚝은 왕비의 후원에 고풍스러움을 더해준다. 강녕전과 교태전 근처에는 대비전인 자경전과 왕세자가 머무르던 동궁이 있다.

후궁과 궁녀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함화당과 집경당을 지나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연못이 등장한다. 향원지라는 이름의 이 네모난 연못 위에는 작은 누각 하나가 있다. 바로 향원정이다. 큰 규모의 경회루와는 다르게 향원정은 아늑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향원정에서 북쪽, 경복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고종이 세웠던 건청궁의 터가 있다. 지금은 빈터만 휑하니 남아있지만 건청궁은 조선말기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함께하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깃불을 밝혔던 곳이기도 하지만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건청궁은 일제가 경복궁을 장악하던 당시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머무르던 곳이다.

조선의 흥망을 함께한 경복궁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으로 옛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500년 조선 역사를 한 번에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최근 경복궁은 야간개방과 무료개방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민들과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만 24세 이하의 대학생들은 경복궁 무료입장이 가능하지만, 우리의 궁궐을 관심 있게 보는 대학생들은 많지 않다. 본교 역사문화학과 한희숙 교수는 “대학생들이 해외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는 관심이 부족하다”며 “해외 문화를 접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궁궐과 역사를 먼저 알면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낙엽 비가 하나둘씩 떨어지는 늦가을, 고즈넉한 우리 고궁을 한 바퀴 둘러보며 화려했던 조선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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