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김에덴 기자 ked87@naver.com>

“1차 서류 전형에 불합격하셨습니다” 청년 실업 100만 시대에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은 오늘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성적, 스펙, 봉사활동 모두 중요하지만 취업의 첫 번째 관문은 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다. 자소서가 부족하면 서류에서부터 탈락이니 면접에서 포부와 장점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도 없다. 이 때문에 취준생들은 1차 합격을 위해 자소서에 많은 공을 들인다. 기업별로 원하는 자소서 형식도, 내용도 모두 다르니 자소서를 쓸 때 기업의 입맛에 맞춰 준비하기 바쁘다.

본교 이예슬(경영 11) 학우는 “탈 스펙화를 추구하는 기아자동차 같은 경우는 자유 형식에 가까운 자소서였다”며 ”열린 질문이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지원자들이 많을 것 같아 내 대답을 더 차별화해야 할 것 같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부담감은 자소서를 과장해서 쓰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소설’을 아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답한 이 학우는 “없는 일을 쓰지는 않지만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적합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앞서 언급한 ‘자소설’은 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로, 남들보다 화려하고 특별한 자소서를 만들고자 자소서에 픽션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소개서는 본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작성하는 글이다. 하지만 취업난이 심한 요즘,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소설처럼 쓰는 일이 만연해 있다. 이 학우는 “자기소개서가 기업에게 분별력 있는 지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많은 구직자들이 자소서에 과장을 섞어 제출하고, 타 기업이더라도 비슷한 문항에 대해선 이른바 ‘복붙(복사+붙여넣기의 합성어, 작성한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다른 곳에 붙여 넣는다는 의미)’을 한다는 것이다. 이 학우는 “똑같이 자소서에 과장된 내용을 적고, 복붙을 하더라도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된다”며 “자소서가 과연 기업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자소서에 관한 고충은 본교 학우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동진(28 남, 서울 시립대 졸)씨는 자소서의 내용 검토를 위해 한 취업 관련 카페에 자소서 스터디 모집글을 올렸다. 김씨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소서를 보여주면서 내용이 적합한지, 이해가 잘 되는지 등을 확인하는 데엔 스터디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소서를 혼자서만 준비하기엔 벅찼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채 시즌에는 기업의 공고가 한 번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에서 요구하는 자소서의 분량도 많을 뿐더러 질문의 난이도까지 높아 동시에 여러 기업을 준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학만(28 남, 경기대 졸)씨는 “자소서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창작물이란 말이 어울린다”며 “신한금융그룹을 준비하면서 자소서 아닌 자소설을 썼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취준생들 사이에서 신한문예(신춘문예+신한은행의 합성어)라고 불리며 자소서 1만자의 분량을 요구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제시된 질문으로는 ‘지원동기 및 포부, 성장과정, 본인의 가치관 및 인생관에 영향을 끼쳤던 경험에 대하여 주제별로 구분하여 자유롭게 기술해 주세요(7000바이트 이내)’, ‘신한은행 입행을 위해 학창시절 특히 노력했던 내용과 결과 등에 대해서 기술해 주세요.(4000바이트 이내)’ 등으로 상당한 양의 대답을 요구한다. 이 밖에도 김씨는 “해외봉사활동을 갔을 때 사실 영어를 못해서 꿀 먹은 벙어리였지만, 자소서에는 영어를 못해도 바디 랭귀지를 하며 진행을 도왔다는 식으로 썼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한정된 경험을 기업의 자소서 질문에 따라 말만 조금씩 다르게 바꿔 대답을 우려먹었다”며 비슷한 대답이 담긴 자소서를 회사 이름만 바꿔 ‘복붙’한 경험을 설명했다.

‘자소설’은 취업을 준비하는 고학년만의 일이 아니다. 본교 저학년들의 경우 ‘역량개발’이라는 교양 강의에서 자소설을 쓰기도 한다. 역량개발(이하 역개)은 본교의 교양 필수 강좌로 학생 개개인의 자서전을 만드는 것이 수업의 본래 목표 중 하나다. 이는 신입생 때 자아탐색을 통해 기초 핵심 역량을 갖추고 리더십 소양을 개발 한 뒤, 3, 4학년 때 구체적 진로를 설계하고 전문 직업 분야에서 리더십을 갖추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 역개 자서전을 쓴 본교 이승연(법 14) 학우는 “역개 자서전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진행되지도 않고 의미가 없는 것 같다”며 그 실효성을 지적했다. 이 학우는 “솔직함을 바라고 진행하는 강의겠지만 많은 학생들 앞에서 자서전을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글을 과장해서 쓰게 된다”며 “잘 기억나지 않는 유년 시절에 대해 작성하라기에 그냥 부풀려서 쓰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본교 리더십 역량 개발 센터 겸임교수인 박소연 교수는 “학생들이 쓴 자서전을 보며 과장을 느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솔직하게 작성을 하는 편이라 생각한다”며 “자서전 자체에서는 과장된 내용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없는 사실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쓰는 학생이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소서는 왜 1차 서류전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걸까. 원인은 기업 채용 방식의 변화에 있다. 최근 기업은 스펙보다 지원자의 역량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채용한다. 모든 걸 어중간하게 잘하는 사람보다는 하나라도 반짝이는 구석이 있는 사람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채용 트랜드인 ‘탈 스펙화’다. 이러한 기업의 경향에 따라, 취준생들도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 자소서를 쓰는 것이다.

최근 사회에서 스펙이 비슷한 지원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소서를 통해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원자들은 자소서를 자소설로 만들어낸다. 이에 대해 박소연 교수는 “자소서 내용의 진위 여부는 면접관들이 심층적 질문을 통해 쉽게 밝혀낼 수 있다”며 “자소설보다는 솔직하고 설득력이 있는 자소서를 쓸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자신에 대한 심도 있는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특히 3년 이내의 자신의 삶을 잘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며 발전을 꾀할 때 좋은 자소서가 만들어진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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