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25시]

작곡과 사태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15일(월), 작곡과 학우들은 교수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교수들도 기자회견을 통해 학우들의 주장이 왜곡됐다며 전면 반박했다. 심지어 교수들은 학생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감사팀에서는 징계위원회가 열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혀, 꼬이고 꼬인 작곡과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수그러들 기미가 없는 작곡과 사태에서 가장 더러워지고 있는 것은 바로 ‘숙명’이라는 이름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숙대 작곡과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고, ‘숙대 교수 “밤일 나가냐” 폭언’ 이라는 자극적인 기사가 연일 포털사이트에 오르내린다. 어느 샌가 숙명에게 ‘작곡과 사태’는 지울 수 없는 꼬리표가 됐다. 포털사이트에 숙대를 검색하면 ‘숙대 작곡과’가 연관검색어로 나오고 인터넷 기사에는 작곡과뿐만 아니라 ‘숙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한창 입시철인 지금, 수험생들은 ‘학교에 문제가 있으니 작곡과 사건이 터졌겠지’라고 생각하며 지원을 꺼릴 지도 모를 일이다.

숙명의 이미지가 실추된다고 해서 이 문제를 덮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학우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고 좀 더 나은 숙명을 위해 작곡과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그러나 해결 방법이 잘못됐다. 기자회견을 통해 벌어지는 날선 공방전은 해결이라기보다 숙명의 일원인 우리들을 깎아내릴 뿐이다.

현재 교수와 학생들은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을 하느라 바쁘다. 기자회견을 열어 서로를 공격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려고 한다. 더 이상의 기자회견은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젠 잠시 숨을 돌리고 올바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작곡과 학우들과 교수들도 숙명인임을 자각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우선, ‘소통’이라는 방법으로 교수와 학생 사이에 쌓여가는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상대의 주장을 한 귀로 듣고 흘리기보다,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인정할 부분은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더 이상 숙명을 더럽히지 않는 방법이다.

以聽得心(이청득심). 귀 기울여 들으면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지금 우리 숙명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청득심의 자세다. 고집 피우기보다 상대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진정한 소통이 존재하는 숙명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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