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구월 중순, 기력을 다 못 펼친 여름이 아쉬웠는지 한낮에는 아직도 무더위가 심술을 부린다. 청명해진 하늘 덕분에 햇볕은 더욱 따갑게 내리쬐지만, 새벽녘에는 으슬으슬함이 파고들어 나도 모르게 이부자락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듯 추석도 일찍 찾아왔다. 38년만의 이른 추석이 낯설기만 한 것은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6일부터 10일까지, 대체휴일제도가 처음 시행돼 더 긴 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대학생들은 개강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추석 연휴를 맞이했다. 마치 학창시절 겨울방학이 끝나고 며칠 뒤 바로 봄방학을 맞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대에 부풀어 연휴 계획을 짰다.

긴 연휴 때문일까 유달리 이번 추석은 한적한 기운이 감돌았다. 보통 때 같았으면 친인척을 포함해 최소 서른 명은 모였을 명절이지만 이번 추석에는 스무 명도 채 모이지 않았다. 연차휴가를 이용해 유럽여행을 간 친척들도 있었고 반대로 일이 바빠서 참석하지 못한 친척도 있었다. 또래의 남자 사촌들은 군대에 갔고 결혼을 한 여자 사촌들은 시댁으로 갔다. 각자 사정이 있었지만 얼굴 한번 못 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 아쉬웠다. 시끌벅적했던 큰집은 이따금씩 정적이 흘렀다.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닌데 이상하게 어색함이 느껴진다. 어색함을 해소하고자 “결혼은?” “대학은?” “취업준비는?”과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순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친척들이 함께하는 자리가 계속 있기 힘든 자리가 된 걸까. 고향에 못 내려온 사촌들이나 답변하기 힘든 질문을 하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럴 수밖에 없는 사회현상이 안타까웠다.

서둘러 차례를 지내고 깡통 햄 세트를 한 아름 안고서 헤어지는 길에 생각했다. 앞으로 20, 30년 뒤에도 귀성길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제사상 차릴 때 홍동백서(紅東白西), 어동육서(魚東肉西)와 같은 기본적인 원칙은 지켜질까. 아니, 적어도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이어질까. 사실 그 마음만 통한다면 방식에는 제한이 없다는 의견이지만 혹시라도 그 마음까지 변질될까 심히 우려 된다.

명절의 본질은 연휴가 아닌 고향방문을 통한 친인척들과의 교류와 조상에 대한 감사인사다. 죽은 조상들에게 절하는 것을 효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살아계신 부모님은 찾아뵙고 효도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을 외치는 그대가 생각하는 한가위의 목적은 연휴인가 가족의 정인가. 진정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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