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差別),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둬서 구별함’. 사람들은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녀차별, 인종차별, 직종차별 등 사회 속 많은 종류의 차별에 대해 사람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평등을 요구하곤 한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묻는다면 바로 답할 것이다. ‘부당하다’고. 그러나 이 가운데, 우린 정말 차별을 거부하고 있을까?

지난 2013년, 중앙일보에서 발표한 대학순위평가로 인해 본교 내에서는 큰 반발이 있었다. 본교 순위가 급격히 떨어진 사실에 대해 많은 학우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필자 또한 대학순위평가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우리는 이토록 대학순위에 집착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국사회 내 사람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그리고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항상 시험과 면접 등을 통해 매겨진 등급에 따라 각기 다른 곳에 속하게 된다. 경쟁사회, 학벌사회라고 불릴 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등급을 매기는 현실에 대해 많은 청년들은 비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할까. 앞서 언급한 대학순위평가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대학생들은 대학순위에 민감하다. 자신이 속한 학교 순위가 타 학교보다 높을 경우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소위 ‘인서울’‘지방대’를 언급하며 순위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한다.

또한 취업 시 뽑는 기준을 스펙, 학벌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부당하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이 고졸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취업 시 일정 비율을 보장하자, 많은 대졸자들의 반대가 있었다. 이중적인 모습이다.

이는 학벌사회로 인한 차별을 비판하지만, 자신이 경쟁사회 속에서 얻은 성과에 대한 차등적인 대우가 타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대학순위라는 등급에 민감하며 실제 차등 대우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를 비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경쟁사회 속에서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이, 현 사회에서는 학벌에 따른 차등 대우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겉으로는 차별을 거부하고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자신이 노력한 성과에 따른 차별 대우는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쟁을 요하는 사회의 책임일지, 그 사회 속에서 받아들인 채 차별을 당연시 여긴 우리의 책임일지는 판단할 수 없다. 단지, 이러한 사회현실에 대해 씁쓸하다는 감정을 표하며 글을 마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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