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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린라이트 인가요?
오진화 기자  |  smpojh85@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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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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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김지민 기자 wlalsdl1228@naver.com>  
 

아침은 그에게서 ‘잘 잤니’라는 아침 인사가 온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수업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5분이 지나도록 그에게서 답이 오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다. 왜 답장을 안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가도 그와 아무 사이도 아닌 나는 그저 혼자 감정을 삭힐 뿐이다. 남자친구는 아니다. 우리는 그를 ‘썸남’이라 부른다.

모두가 썸을 이야기한다. 이어폰 너머에서는 ‘연인인듯 연인아닌 연인같은’사이를 노래(<썸>-소유,정기고(Feat 릴보이 of 긱스))하고 TV를 틀면 남자 4명(JTBC <마녀사냥>)이 나와 남녀의 사이가 ‘그린라이트’(호감있는 남녀의 관계가 청신호임을 의미)인지 아닌지를 정해준다. 시간을 때우려 웹툰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젊은 남녀의 설레는 일상을 묘사한 웹툰(<썸툰>)이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단지 이어폰 너머, 모니터 너머, TV 너머의 이야기가 아니다. 본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도 ‘썸’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온다. ‘썸남이랑 톡(메신저)으로 연락하는 도중에 갑자기 연락이 끊겼는데 불안해.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오늘 썸타는 오빠와 포옹을 했는데 너무 설레서 잠이 안와’ 심지어 한 학우는 ‘지금은 친한 오빠 동생 사이인데 이제 그 오빠와 썸 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방법 좀 알려줘’라며 썸타는 방법까지 묻는다.

◆ 썸, ‘새로운’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야말로 ‘썸’의 시대다. 노래, 드라마, 예능은 물론이고 바로 옆에 앉아있는 친구까지 모두 썸을 타고 있다.

‘썸’은 영어 ‘Something’의 줄임말로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사귀지는 않는 복잡미묘한 상태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새로운 단어라고 하지만 사실 ‘썸’이란 현상이 새롭게 등장한 건 아니다. 본교에서 ‘결혼과 가족’을 강의하는 김경미 교수는 “20대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에도 남녀 사이에 호감을 가지거나 설렘을 느끼는 단계는 있었다”며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이를 통칭하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썸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20대 사이에서 ‘썸’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썸 이후에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썸에 머물러 있거나 썸에서 관계를 끝내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375명의 학우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기간: 4월 7일-11일, 신뢰도: 95%, 오차범위:±1.9%)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썸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51%의 학우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썸을 탔다고 해서 무조건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썸을 타다 결국 남남이 되는 이들(49%)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설문에 응한 34%의 학우들은 연애하는 것보다 썸타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김채영(화학 14) 학우는 “연애가 필요한지 모를 정도로 연애할 때보다 썸탈 때 더 설렌다”고 말했다. 썸이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 바로 전 단계임을 고려해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학우들은 왜 ‘썸’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 썸에 머무르는 이유는?
우선, 불확실한 감정이 가장 주요한 이유다. 썸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66%의 학우들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확실치 않아서’라고 답했다. 김진희(체육교육 14) 학우는 “썸탈 때는 서로 좋은 말만 해주고 기분 상할 일 없도록 조심하게 되는데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 줬을 때, 이에 대한 고마움과 이성으로서 호감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모 학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재미난 인연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 때문에 이성적 감정과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혼돈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된 후,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10명 중 6명이 넘는 학우들은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불분명해 썸에서 계속 머무르거나 더 깊은 관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연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구속과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10%의 학우들은 ‘연인 사이의 구속 또는 의무감이 싫어서’를 그 이유로 꼽았다. 신서란(미디어 14) 학우는 “썸타는 관계에서는 마음 내킬 때만 연락을 하고 만나는 경우가 많지만 연인 사이는 이와 다르다”며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면 자주 연락하고 데이트를 하는 등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흔히 이야기 하는데 연인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할 이러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연인으로 발전하기 전의 관계에서는 호감있는 썸남 말고도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연인 사이가 되면 그럴 수 없지 않느냐”며 “연인이 됐을 때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있다고 해서 호감있는 다른 남자나 남자인 친구들과의 사이와의 관계가 제한되고 구속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본교 김경미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구속받기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귀하게 자라왔다”며 “그들이 연인이라는 관계에 묶여 양보와 희생을 강요당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연인으로 발전하는 순간 연인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뒤따르게 된다”며 “때문에 젊은이들이 영원히 썸의 지점에만 머무르고 싶어한다”(데일리안 2014.3.22일자 <썸마저 탈 수 없어 썸썸썸>)고 말했다.

취업에 대한 압박감과 연애 비용에 대한 부담 역시 썸에 머무르게 하는 요인이다. 본교 설문조사 결과, 9%의 학우들은 취업이나, 연애비용 등 연애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썸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권수진(법 12) 학우는 “바쁜 수업, 쌓여있는 과제를 해야하는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대외활동, 봉사활동까지 해야하는 상황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연인이라는 관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차라리 썸타는 것처럼 연애하는 것과 비슷한 설렘을 느낄 수 있고 오히려 시간날 때 부담없이 함께 만나서 노는 것이 더 편한 관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은(교육대학원 11) 원우는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도중에 썸을 타게 됐지만 시험 준비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었다”고 말했다.

본교 리더십역량개발센터 소속 이숙정 교수는 “사회가 청년기에 이뤄야 할 발달과업으로 진로나 취업을 강조하고 있어 20대가 연애에 대한 감성적인 발달에 에너지를 쏟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호감있던 이성과 연인으로서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관계를 끝내는 모습을 보면 현재 젊은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이별에 대한 두려움(9%)과 용기를 내 고백하지 못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어서 등의 기타(9%)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썸’에 머무르게 된 이유였다. 

◆ 학우들은 썸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나
‘썸’에 대해 학우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썸 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묻는 질문에 대다수의 학우들(92%)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은별(LCB외식경영 14) 학우는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연애를 하게 되면 깊은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렵다”며 “본격적인 연애를 하기 전에 썸이라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상대방을 좀 더 깊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윤단비(멀티미디어과학 13) 학우 역시 “어떻게 보면 애매모호한 관계 때문에 썸탈 때가 가장 답답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며 “상대방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썸남에 대한 나의 감정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썸을 탈 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좋다는 학우도 있었다. 최지원(한국어문 14) 학우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의 행동에 설렘을 느끼고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다”며 “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보내는 사소한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져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썸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학우(8%)도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서로 ‘썸남썸녀’의 관계일 때는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와 같은 마음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갑자기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와 같이 이 관계가 언제든지 단절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며 “또 호감은 있는데 사귀는 것은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 때문에 상대를 대할 때 어디까지가 적정한 행동인지 헷갈려 더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학우 역시 “썸을 탄 이후에 연인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썸에만 머무르는 관계는 호감을 전제로 하지만 연인이 됨으로서 부과되는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관계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썸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
연인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썸’에만 머무르는 20대의 연애 방식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시각을 보였다. 김경미 교수는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아직 나이가 젊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며 “연인 관계처럼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전제로 하지 않지만 호감은 있는 썸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관계를 통해서 다양한 가치관과 사고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인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썸의 관계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을 수동적으로 보고 20대 스스로가 그들의 수동적인 모습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숙정 교수는 “데이트 비용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나 취업에 대한 부담감 등 개인적 감정이 아닌 사회적인 요인 때문에 호감 있는 사람들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썸에서 관계를 끝내는 경향을 보면 아쉬움이 있다”면서 “그러나 그 원인을 사회로 돌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포기하지 말고, 20대 스스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썸의 관계에서만 머무르는 모습들이 점차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썸’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만남을 가능하도록 하는 반면 불안정한 관계에 놓이도록 만든다. 이렇듯 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썸을 소재로 문화콘텐츠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지금, 한동안 썸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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