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우리 예술가]

 

▲ CJroblue <사진=권나혜 기자>

일러스트레이터 CJroblue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한 남자가 있다. 올해로 만 28세, 어느새 서른 가까운 나이를 먹은 그는 현재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러스트 강의, 무대디자인, 포스터 제작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대학교를 3번 중퇴하고, 10여 만원을 들고 무작정 효주로 떠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음에도 그는 여전히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가식적이지 않은, '솔직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말부터 꺼냈다. CJroblue(본명 최정현, 29), 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쉽지 않았던 마음 성장기
음악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예체능 쪽에 재능이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진로가 정해졌고,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교도 관련 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세 번이나 대학교를 옮겼고, 모두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 문제”라고 답했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친구들과 동대문에서 옷을 사려고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전화했던 적이 있다” 며칠 뒤 답장 대신 돌아온 어머니의 긴 편지에는 그가 모르던 상세한 당시의 집안 사정이 적혀 있었다. “저는 단순해서 편지를 읽고 무언가를 깨닫기 보단, ‘부모님이 돈이 없으시구나, 내가 벌어야지’하고 2학년이 되던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그는 집에 필요한 생활비와 함께 중학생 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 애니메이션과 영상연출을 전공했던 그는 비싼 학비를 내고 들어간 대학에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미 배운 것도 있었고, 고등학교 커리큘럼보다 못한 수업도 있었어요. 또 이미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재미에 빠져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23살까지 쉬지 않고 일했던 그는 군입대 날짜가 다가오자, 일만 해온 자기 자신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군대를 가기 전, 선물을 주자는 생각으로 마지막 월급을 털어 14시간을 경유하는 편도 호주행 비행기 표를 샀다. 비행기표를 사고, 호주에 가서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챙겨간 CRT모니터와 데스크탑 덕분에 추가요금 30만 원까지 내고나니 주머니에 남은 것은 덜렁 10여 만 원 뿐이었단다.

“일 년 정도 여행하고 입대하려 했는데, 막상 가보니 제가 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많은 기회와 한국과 다른 환경이 보였어요. 결국 일 년 간 열심히 일하고 다시 호주의 대학교에 입학했죠.”

호주에 머문 삼년 동안 그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술집, 당구장, 자동차 공장 등을 거쳐 나중엔 레스토랑에서 바리스타를 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한 학기에 700만 원 정도인 학비를 여유 있게 모으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군대 등의 문제가 겹쳐 쫓겨나다시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호주에서 얻은 것이 많기에 저는 속상하지 않았지만, 공항에서 부모님의 표정을 보았을 때는 마음이 아팠어요. 제게 지원을 못해준 미안함과 저에 대한 실망감이 겹친 표정은 제 가슴을 많이 울렸죠.” 

  <사진제공=CJroblue>

◆ 그림, 마음의 위안
녹록지 않은 현실은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 됐다. “제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삐뚤어졌을지 몰라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위안이죠.”

현실에서 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노래방을 가거나, 담배를 피거나, 자전거로 몇 시간을 달려도 해소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만 이마저 부담으로 다가올 때 그는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그 시간 만큼은 세상이 온전한 그의 편이 돼준다고.

“저는 성격이 급하고 고집도 세요. 흔히 ‘최씨 고집 세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게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성격이 괴팍하다는 쌍커풀 없는 눈에, 곱슬머리죠. 그런 제가 그림을 그리면 몇 시간, 몇 날을 책상 앞에만 앉아있어요. 부모님도 신기해 하실 정도죠.”

‘위안’이라는 주제는 그의 닉네임에도 드러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인데, 파란색은 남자에게 성공, 희망을 뜻하지만 우울함을 의미하기도 해요. 제가 희망을 꿈꾸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것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호주에서만 판매하는 파란색 말보로 담배를 본 그는 ‘나도 세상에서 흔하지 않은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하며 영어이름 CJ와 파란색의 blue, 담배 말보로의 ro를 합친 CJroblue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 CJroblue의 그림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 11월부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군 제대 후 이틀만에 바로 일을 시작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집단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그곳에서 얻는 장점의 크기를 넘었음을 느끼게 됐다.      

“감성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요. 여전히 금전적 문제의 불안감이 있고, 안정적인 생활도 꿈꾸지만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제 시간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그의 그림에는 담배, 여자친구, 자동차 등 일상적이고 소소한 소재가 많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봤을 때 주제를 몰라도 쉽게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담배는 이별이나 아픔을 위로해주는 캐릭터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무거운 주제지만 누구나 겪는 소재를 위트 있게 표현하고 싶었죠.”

 

▲ MR.C 캐릭터 <사진제공=CJroblue>

그는 현재 일러스트 강의, 핸드폰 케이스 제작, 무대디자인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책임질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종류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재밌을 뿐만 아니라 저를 강하게 해주는 힘이 돼죠.”

캐릭터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만든 본인 캐릭터인 ‘MR.C’(아래 사진)도 이러한 도전 중 하나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이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 “귀여운 캐릭터지만 사실은 취업난을 겪거나, 틀에 묶여 고민하는 20-30대의 대학생, 직장인을 대상으로 했어요. 구멍은 공허함을 표현한 거죠. 사람들이 MR.C를 봤을 때 위로받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을 묻자, 그는 해병대 시절에 그린 그림(왼쪽 사진, <distance>)을 꼽았다. “군대에 늦게 간만큼 손과 머리가 굳을까봐 이병 때부터 미친 척을 했어요.(웃음)‘2년간 200권의 책을 읽자’는 목표를 세우고 이병 때부터 책을 읽었어요. 또라이 소리를 듣다가 다행히 나이가 많은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죠.”

군대에서 읽은 책을 기록하려고 무지 공책을 산 그는 그곳에 그림도 그렸다. “봄날에 동해바다 한 가운데 배가 떠있었어요. 유람선에 탔다는 생각으로 스케치 없이 쓱쓱 그림을 그렸죠. 그땐 포토샵이 없어 휴가 때 그 그림을 그림판으로 채색했어요.” 비싼 편이 아니었던 공책의 재봉이 뜯어져 그림의 반이 갈라졌고, 그 바람에 남자와 여자 사이를 테이프로 붙였는데 그 자체가 이별의 거리를 나타내는 것처럼 표현됐다고. “그 당시 제가 처했던 상황이나 시기 때문에 특히 기억에 남는 그림인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일은 큰 건물 외벽 전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또 브랜드와의 협업도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특히 명품 브랜드와 협업하고 싶어요. 명품의 탄생과정을 보면 에피소드가 많은데 어느샌가 그런 것보다 남들이 명품이라 불러서 그 물건을 소유해야 하는 것처럼 인식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누구나 명품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그는 50대가 되기 전까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다름 아닌 몸매관리. 중학교 입학 전, 과체중이었다는 그는 스스로 발톱도 깎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50대가 되도 찢어진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제가 좋아하는 파란색 반스 운동화를 신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보기에도 적절하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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