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으로 얼굴을 알리기 전,
연기로 인정받는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었죠

 

금요일 11시 20분에 방영되는 <나 혼자 산다>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외국인이 출연한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온 후 모델과 배우를 꾸준히 활동해 온 파비앙. ‘한국과 6년째 연애 중’인 그는 파비앙이라는 이름보다 친구들이 지어준 최윤이 더 잘 어울린다. 홍대 자취방에서 생활하며 감기를 걸리면 방에 큰 태극기를 걸어놓은 그. 그를 만나기 위해 평소 자신이 커피를 자주 만든다는 홍대의 한 카페를 찾았다.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와서 기다렸다는 그가 ‘안녕’이라고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 태권도와 한국을 사랑한 청년
198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파비앙(Fabien, 최윤)은 한국에 산 지 올해로 6년째다. 그는 “2007년, 여행 차 한국에 3개월 머무른 적이 있어요. 하지만 돌아간 후에도 한국이 너무 그리워 1년 후 다시 오게 됐죠. 물론 그 때도 거주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좋아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을 계속 미루다보니 지금까지 있게 된 거예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잠깐의 여행이 그를 6년 동안 한국에 머물게 한 것이다. 


파비앙이 한국에서 살게 된 것은 태권도의 영향이 컸다. 5살이라는 어린나이부터 태권도를 하기 시작한 그.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태권도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 몸이 많이 허약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태권도를 해보라고 권유하셨죠. 유도나 다른 운동을 해봤지만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태권도도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태권도 사범님이 ‘싫어하는 아이에게 발차기를 한다고 생각하라’며 재미있게 가르쳐주셨죠. 그 때부터 태권도에 빠져서 한국 여행이 제 로망이 됐어요” 그는 실제로 프랑스에서 태권도 사범뿐 아니라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며 우승한 경력도 있다.


한국 문화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던 그는 몇 년 동안 외국인을 피해 다녔다고 말했다. 언어와 문화 등을 빨리 습득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인들하고만 어울린 것이다. 특히 이태원을 처음 지나가던 중 외국인이 너무 많아서 ‘이건 뭐지’하며 당황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현재도 외국인 친구가 없나’라는 질문에 ‘있지만 별로 친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매니저에게 ‘미친놈’이라 말하며 장난을 치거나 ‘개강해서 힘들겠다’와 같은 보통의 20대들이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곤 했다. 그가 이렇게 유창한 한국어를 쓸 수 있는 것은 많은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당시에는 이화여대 한국어학당을 다니며 공부했다고 한다. 이에 숙대에서 배울 생각은 없었냐는 급작스러운 질문을 던지자, 당황하며 “아, 졸업은 아직 못한 상태예요. 나중에 졸업은 숙대에서 할까요?”라고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녹음기에 대고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며 협찬해달라는 등의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한편 그가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는 MBC예능 <나 혼자 산다>를 시청하다 보면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파비앙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외롭지 않냐’는 물음에 1년 전에 프랑스를 갔었다며 그 외에도 친구들이 1년마다 한 번씩 놀러오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왜 저 미친놈이 잠시 여행만 다녀온다고 하더니 안 오는 거야?’라며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한국 여행을 즐겨 온다”고 웃었다.


그렇다면 그가 가족을 그리워하면서까지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프랑스보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잘 맞고 즐겁다”고. 한국과는 다르게 프랑스는 24시간 문화가 없다. 또한 집에서 노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릴 수 있는 사소한 문화가 행복으로 여겨진 것이다.


반면 한국을 사랑하는 그에게도 이상하게 여겨졌던 문화가 있었다. 바로 선후배 문화. “나이가 1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사람에게 선배라며 꼬박꼬박 불러야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좋아요. 제가 나이가 많다보니 ‘선배, 형’이라고 불러주는 게 좋더라고요. 그 땐 왜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뗬다.

◆ 프랑스에서 온 한국 배우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더 친숙한 파비앙은 2008년 MBC <에덴의 동쪽>으로 데뷔한 후 <제중원>, <더킹 투하츠>, <닥터 진> 등 드라마 단역을 맡으며 배우의 길에 한 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외국인’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외국인에게 어울리는 한정된 역할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바텐더 역할부터 선교사, 의사 등이 실제 그가 맡았던 역할이었다.


이러한 그가 배우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배우의 꿈을 갖게 된 것은 당시 스크립터로 일했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촬영장을 자주 갔고, 누나 또한 뮤지컬 배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파비앙은 중학생 때부터 연극 동아리를 통해 꾸준히 연기 연습을 해왔다고 한다. “한번은 노숙인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데, 사실적인 연기를 위해 지하철역에서 실제로 체험을 한 적이 있어요”라며 연극 동아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릴 때부터 연기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한국에 온 후에도 ‘극단 예지인’에서 활동하며 배우에 대한 열정을 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프랑스 배우가 아닌 ‘한국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파비앙은 자신도 몰랐던 일이라고 말한다. 프랑스 배우를 꿈꿔온 것 보다는 자신의 나라가 아닌, 타국에서 배우 생활을 할지는 몰랐던 것이다.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던 도중 한 제작사의 오디션 제안을 받았어요. 신기하게도 그 오디션에서 합격해 역할을 맡게 됐죠. 그 때 ‘한국에서도 배우를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며 지금까지 한국 배우에 도전을 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나 혼자 산다>를 출연하기 전까지 파비앙의 열정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쉬운 길은 있었다. 바로 예능. 3년 전부터 끊임없이 예능 섭외가 들어왔지만 그는 수락하지 않았다. 연기를 통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굳건히 모든 예능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예능으로 먼저 얼굴을 알려야 작품이 들어오잖아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배우가 되려면 무조건 연극으로 인정받아야 했어요. 그래서 당연히 한국에서도 연극, 즉 연기를 통해 인정받는 것이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현재 예능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인지도를 얻은 그는 “제가 생각이 짧았나보네요”하며 웃었다. 


현재까지 단역만 맡아온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불만이 없다고 말한다. 단지 역할이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하다는 말 뿐이었다. 오히려 아무런 작품이 들어오지 않을 때 더 힘들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배우에 대해, 그는 “자유롭다”고 짧게 답했다. “배우는 평소 제가 할 수 없는 경험을 해 볼 수 있어 좋아요. 선교사 역할일 땐 조선시대를 느낄 수 있었고, <더킹 투하츠>에서는 총을 다뤄보기도 했어요. 그 역할을 맡지 못했다면 총을 써볼 기회도 없었겠죠(물론 쓰면 안되지만)”라고 말하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고 답했다. 앞으로 20부작 모두 출연하는 역할로서 액션 연기, 로맨스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연적도 없는 곳에 정착해, 단지 한국 생활이 좋다는 하나만의 이유로 ‘한국인화’ 돼가고 있는 그. 마지막으로 프랑스로 언제 돌아갈 것인가 라고 묻는 질문에 파비앙은 모른다고 답한다. 한국에서 얼마나 살지, 프랑스로 언제 다시 돌아갈 지는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단지 한국이 좋아서 살고 있는 현재진행형일 뿐. 후에 한정된 역할의 한계를 뛰어 넘은 ‘배우 파비앙’이 돼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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