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이혜승

뒷골목 풍경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임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거하게 취한 손님의 술 냄새와 옆집 식당의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아직은 서늘한 밤바람을 타고 지독하게 내 코를 찌른다. 코를 막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손님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점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어야 한다고 했다. 어서 오세요. 이 어둡고 더러운 뒷골목에서 나의 웃음이 어떠한 위로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나는 한껏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친절하게 웃는다.
술 냄새와 퀴퀴한 땀 냄새를 풀풀 풍기던 사내는 소주 한 병과 오징어 땅콩을 집어와 계산대에 내려놓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점장이 부르짖는 그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건에 리더기를 가져다 댄다. 여기 편의점의 모든 물건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바코드로 기억된다. 그것은 아마 나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수험번호 449802, 불합격입니다. 기계음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바보같이 되물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한 번만 확인해주세요. 귀하는 본 대학 전형에 불합격되셨음을 알려드리며….
다시 원점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없는 이 뒷골목에서 영원히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뒷골목의 풍경이 아름다웠던 적이 있던가. 화려한 도시의 어둠과 오물을 한데 모아둔 것 같은 이 뒷골목이 한 번이라도 나에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온 적이 있던가. 매일을 이곳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했고 기도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다시 가야 한다면, 조금만 더 버티자.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 이 뒷골목을 벗어날 수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재수학원에 등록하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벌써 삼 개월째가 되어 간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편의점에서의 일은 생각과는 다르다. 턱없이 높은 학원비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는데 점점 힘에 부친다. 콜라, 오렌지 주스, 사이다, 콜라, 오렌지 주스, 사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음료수 배열을 따라 나는 계속해서 정리를 한다. 다음은 휴지, 생리대, 면도기. 다시 한번 휴지, 생리대, 면도기. 모든 것이 규칙 속에서 배열되고 규격화되는 이곳에서 문득 나는 몇 번째 줄에 놓여야 할 상품일까 궁금해진다. 한 번쯤은 휴지를 놓는 칸에 오렌지 주스를, 면도기 대신 생리대를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마 귀신 같은 점장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교대 시간이 다 돼서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노라면 꼭 그녀가 온다. 피곤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 우유코너로 가는 그녀에게서는 인상을 절로 찌푸리게 하는 고약한 뒷골목의 냄새가 아닌 다른 냄새가 풍긴다. 나는 그 냄새에 대한 호기심에 항상 그녀의 뒷모습을 조심스럽게 쳐다보곤 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일수록 앞쪽에 배열해놓는데 그녀는 꼭 맨 뒷줄에 놓인 우유를 꺼낸다. 그런 다음에는 주변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곤 한다.
“요즘 왜 이렇게 버려야 되는 게 많아? 배열을 제대로 해두지 않는 거 아냐?” 본사의 방침에 따라 유통기한이 1분이라도 지난 상품들은 즉시 버려야 하기 대문에 점장은 잔소리를 그치지 않는다. 그는 매상이 떨어진 게 잘못된 배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투덜거리는 점장의 손에 잔뜩 담긴 우유들을 보고 있자니 순간 손에 땀이 베어 나온다. 저 우유들은 모두 뒷골목 어딘가에 버려질 것이다. 나도 무언가의 규칙에 따라 뒷골목의 깊은 어둠으로 버려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유통기한은 얼마 남은 걸까. 그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뒷골목의 풍경에 나는 눈을 감는다.
한참을 투덜대던 점장이 나가고 난 뒤 대걸레로 누군가가 쏟아놓은 라면국물을 닦고 있는데 어김없이 그녀가 들어온다. 나는 습관처럼 그녀의 뒤꽁무니를 쫓는다. 평소처럼 그녀느 우유를 고르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생리대 따위가 진열된 코너에 멈춰 선다. 순간 누군가의 방을 훔쳐본 것 같은 느낌에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저기요.”
조금은 거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맑고 선명하다. 나는 허리를 펴고 그녀에게 돌아선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잇는다.
“여기, 면도기랑 칫솔의 순서가 바뀐 것 같은데요.”
나는 네?하고 반문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는 나의 움직임에 살짝 뒤로 물러선다. 정말이다. 칫솔과 면도기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점장이 알았다면 나의 잘못된 배열이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며 나를 저 더러운 뒷골목으로 내던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서둘러 면도기와 칫솔을 정해진 자리로 옮긴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기라도 하듯 땀이 흐른다.
“편의점에서 알바 하셨어요?”
그녀에게 처음으로 묻는다. 그녀는 갑작스런 내 질문에 당황한 듯 조금의 침묵을 둔다. 그리고는 천 원짜리 한 장과 백 원짜리 세 개를 계산대에 올려 놓으며 대답한다.
“아, 작년에 재수하면서 여기서 알바 했거든요. 여기 점장 엄청 깐깐하죠? 물건 제자리에 정리해두지 않으면 난리 날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 같아선 같이 점장 흉을 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피고하고 지쳐 보인다.
“아, 그러셨구나……. 지금은 합격하셨나 봐요. 일 그만 두신 거 보니까. 저는 저기 길 건너 재수학원에 다녀요.”
묻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온다.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된 뒤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귓볼이 뜨거워진다. 나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이 어둠과 사람들의 추한 모습들로 가득 찬 뒷골목 풍경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밝은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아뇨, 지금은 저기 건너편 비디오 가게에서 일해요. 저기가 학원이랑 더 가깝더라고요.”
그녀는 우유팩에 빨대를 꽂으며 무심하게 나를 바라본다. 나는 리더기를 든 채 그녀가 들고 있는 우유팩의 바코드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녀가 문을 밀고 나가자 차임벨이 한 차례 요동친다. 유리문 바깥으로 새벽 빛을 받은 뒷골목의 풍경이 푸르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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