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상
귀고리를 한 남자
박미정(양정여자 고등학교)
 
 
응? 뭐라고? 아빠랑 처음 만난날 이야기 해달라고? 어머, 얘, 됐어. 그런거 알아서 뭐하니. 엄마 설거지해야 한다니까. 심심하면 들어가서 공부나 하셔. …으이구, 끈질기기도 해라. 알겠어! 그럼 이것만 듣고 공부하는 거다, 알았지?
엄마가 24살 때 옷가게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어. 여성의류만 취급하는 곳이었지. 그날 아마 비가 왔었을꺼야.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냥 옷정리나 하고 있었지, 뭐. 그런테 갑자기 문이 끼릭 열리더니 건강하게 생긴 남자가 들어오더라고, 몸도 어찌나 튼튼하게 생겼던지 여성옷 가게랑 너무도 어울리지 않아서 속으로 막 웃었어. 게다가 남자 혼자 들어오다니! 그 사람이 훗날 내 반쪽이 될 줄 누가 알았겠니.  “ 무슨 일로 오셨어요?” 웃음을 꾹 참고 그 남자에게 다가갔어.”선물하시게요?”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는거야. 가까이서 보니까 나보다 나이가 많아보였어. 한 서른 중반??”이걸로 주세요”옷을 가르키면서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렸는데 뭐가 반짝이는거야. 뭐지? 하고 봣더니 뭐였는지 아니? 글쎄, 귀고리였어, 뭐? 그게 뭐가 어쨌냐고? 지금이야 남자가 치마도 입는 세상이지만 그 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지. 어쨌든 옷을 달라기에 줬지 .그리고 그 남자가 가게를 나가고 틀에 박힌 일상이 계속되었단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나? 그때 또 우리가게에 그 남자가 온거야. 이번에도 혼자서. 초면도 아니겠다 내가 반갑게 맞아줬더니 굉장히 쑥쓰러워 하더라. 웃을때 보조개가 참 귀여웠었는데. 어머, 그런 눈으로 보지 마렴, 아무튼 그때 내가 추천해줬던 옷을 사간걸로 기억해, 그 뒤로 일주일에 한번씩 우리가게에서 옷을 샀어, 대체 누구에게 주길래 저렇게 정성이지? 오스타일로 봐서는 젊은 여자에게 주려는 것 같은데. 식사시간마다 그 남자의 이야기가 항상도마에 오르곤 했단다. 엄마가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잖니. 그래서 다음에 또 찾아오면 이유를 물어보리라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한달이 지나도 그 귀고리의 남자가 안오는 거야. 왜지? 왜 안오는거지?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되더라. 무슨일이 생긴걸까? 이제 옷을 살 이유가 없어진걸까?
재미없는 날들이 지나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퇴근을 하려고 가게문을 닫고 있었어. 그런데 등 튀로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때 한창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이 흉흉하게 일어나던 때였거든. 무서운 생각이 막 들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 남자의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을 때 엄마는 소리를 꽥 질렀지. 꺄아악! 이렇게.
“으악, 깜짝이야.”
어깨에서 손이 떨어지고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눈을 떠봤지. 그런데 세상에 내 앞에 귀고리를 한 남자가 있는게 아니겠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렵기도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닭똥처럼 뚝뚝 떨어졌어.”무서워 죽는줄 았았잖아요, 왜 그동안 안오셨어요….”저, 이거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
그 남자의 손가락이 가르킨 쪽에는 쇼핑백이 차곡차곡 놓여져 있었어, 자세히 보니까 우리가게 옷들인거야.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 남자가 뭐라고 했는줄 아니?
“그동안 회사에서 갑자기 출장을 가느라고 못 왔습니다. 제 이름은 김동수이고, 나이는 32살입니다. 왜 제가 매번 여자옷을 사갔는지 궁금하셨죠…. 사실 전 그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차도 많이 나고 제가 나이에 비해 좀 늙어보여서 싫어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젊게 보이려구 귀고리도 하고 혼자 가게에 들어가 여자 옷을 샀었습니다. 이 옷들, 모두 그쪽 드리려고 했스빈다.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제 마음이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 남자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다 끝내고 빗속으로 돌아갔단다. 그리고 우리가게에 다시 오지않았어,
응? 이게 끝이냐고? 맹추야. 이게 끝이면 너희 아빠랑 내가 결혼했겠니? 유유히 사라지던 그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엄마가 수소문해서 결국 찾아냈지. 그래서 귀고리를 한 남자가 내 지금의 남편이고 너희들 아빠란다. 아니지, 귀고리를 “했던”남자지. 지금 손에 물 묻히기 싫어서 밥도 굶는 너희 아빠가 예날에 날 꼬시려고 귀고리를 했다는게 믿어지니? 음. 그래도 그때는 참 멋있었어. 세상의 시너 따위는 신경쓰지 않을 것 같았거든.
어머, 벌써시간이 이렇게 됐네. 애 너 얼른 들어가서 공부하렴.너도 이제 고3인데 열심히 해야되지 않게… 응?얘, 얘 민정아, 니 오빠 좀 보렴. 남자녀석이 화장하고 귀고리 치렁치렁 달고 나간다. 으이구,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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