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어떤 학생에게 재정지원을 해야 하는가? 장학금은 대개 공부 잘하는 학생 들의 몫으로 여겨진다. 장학금을 받는 당 사자도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장학금이 우수함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일반적 인 식이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받는다”라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 명 제가 미국의 많은 명문대학에서는 참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이나 스탠포드 대학 에는 성적과 연계된 장학금이 아예 없다. 미국 대학들이 학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재정적 지원은 크게 “우수 장학금(meritbased)” 과 “필요 장학금(need-based)”으 로 구분된다. 전자는 학생 능력의 우수 함 정도에 따라 지원되는 것으로 성적 장 학금이 대표적이다. 후자는 학생의 능력 이 아니라 필요, 즉 학생의 재정적 상황 에 따라 지급된다. 우리나라의 가계 곤란 장학금과 같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등록 금이 비싼 명문 사립대학 일수록 학생들 에게 필요 장학금만을 지원한다. 부자를 부모로 둔 학생 들은 이런 대학에 지원할 때 학교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은 생각 을 아예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학업 능력 이 얼마나 뛰어나든 상관없다. 장학금은 당연히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의 몫이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은 매 우 중요하다. 대학을 나왔는지, 나왔다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직장이 달 라지고 봉급이 차별된다. 인생의 출발선 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싼 등록 금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있 다면 그것은 공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노동자의 아들과 은행가의 딸이 함께 어 울리고 공부하는 대학을 사회는 필요로 한다. 현대 미국 사회를 건설한 지도자들 은 사회 통합을 위해 대학교육은 빈부가 만드는 불공정성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로 워야 한다는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 최 고의 대학일수록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 다. 그런 대학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 요했다. 하나는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미 칠 수 있는 영향력을 최소화 할 수 있도 록 설계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미국의 SAT는 애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 진 제도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필 요에 기반한 장학금 제도다. 형편이 나으 면 수업료를 많이 내고 형편이 어려운 사 람은 내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적 협력 이고 그것이 교육이다. 바로 이런 제도가 정글 자본주의라는 비판까지 받으면서도 미국 사회가 지탱되는 이유다. 대학의 장학금은 단순히 학업 경쟁을 부추기기 위한 당근이 아니다. 가계가 대 학 수업료의 대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사 회에서 그것은 통합과 협력을 위한 사회 적 기제의 의미를 가진다. 최근 반값 등 록금 이슈가 제기된 이후 우리 사회에는 성적과 연계되지 않은 “필요 장학금”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최고 명문 사학 중의 하나 인 우리 숙명여대가 앞장서서 이 흐름을 선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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