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상

외할머니
김민정(대진고등학교)
우리 외할매, 할매는 여느 다른 할머니들처럼 시골에서 누렁밭을 일구며 사셨던, 언제나 정감있는 하회탈 웃음을 지닌 그런 분이셨다. 나 어릴 적, 처음으로 우리 외할머니를 보았을 때, 할머니는 원래 태어나실 때부터 숱 많고 뽀글뽀글한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나신 줄 알고 내 머리도 할매 머리처럼 곱슬거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을 보면 그 당시 TV에서 유행했던 미스코리아가 생각 나 나도 모르게 할매의 굽실한 머리카락이 부러웠던 거였다.
할머니는 날 처음 보자마자, 아주 오래 전부터 보아 온 사람처럼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연신 싱글벙글 이셨다. 그런 할매를 볼 수 있는 날은 큰 집에서 제사나 한 해에 명절이 있을 때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할매를 만나러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할매를 보지 못하기라도 하는 날엔 내 입은 금방 오리 주둥이처럼 주전자도 걸어놓을 수 있을 만큼 툭 튀어나오곤 했다.
내가 이렇게 할매를 기다리고 좋아했던 것은 낯가림이 심했던 나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와 엉덩이를 툭툭 치며 “어이구, 내 새끼. 내 새끼 고놈 참 귀엽기도 하지. 라고 하시며 검게 그을려 주름이 가득한 그 손으로 알밤처럼 터질 듯한 내 볼살을 아주 꽉꽉 주물러 빨갛게 만드시고는 박수를 치며 웃으셨던 바로 그 모습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랬다. 이상하게도 난 우리 외할매 옆에 있을 때면 고향에 온 듯한 익숙한 느낌, 오래된 고물상처럼 정겨운 그 무엇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외할매는 당신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를 제일 좋아하고 계셨다. 자그마치 5자매나 되는 우리 집 식구가 외할매를 보러 놀러 갈 때도 내 옆에 눈도 크고 키도 큰 우리 언니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도 항상 내가 먼저였고, 덕분에 언니들은 삼촌과 이모들 하고만 있어서 하루 종일 나는 우리의 할매 옆에 꼭 눌러앉을 수 있었다. 언니들의 수많은 째림에도 아랑곳없이 혀를 낼름 내밀고는 곹 할머니에게 달려가고야 마는 철없는 꼬맹이였다.
내가 좀 더 머리가 커졌다고 느꼈던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엄마를 따라 과일가게를 하셨던 큰 삼촌댁으로 놀러간 날이 있었다. 외할매는 여전히 웃으시며 황토색 마늘통에 파란 파뿌리를 잡아넣고 쭉쭉 뜯어내 흰 살만 남기시고 계셨다. 그게 어찌나 신기해 보였는지 할매에게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졸랐는데, 그날따라 할매는 내 손목을 뿌리치며 넌 할 수 없으니 물러나 있으라고만 하시는 거였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 손을 잡아 이끌며 서로 파뿌리를 다듬으며 낭랑하게 떠들어대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 화가 난 나머지 꽁하고 한마디도 않은 채 연거푸 귤껍질만 뜯어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할매는 눈을 찡긋하시더니 또 그 웃음으로 내게 말을 하셨다.“할머니랑 홍시 먹으러 갈까? 지금 생각해도 나는 참 먹을 것에 약한 아이였다. 그 말에 토라졌던 마음이 한 순간에 풀려서 할매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어버린 것이다.!
과일 가게 뒤로 조그만 천막이 처져 무슨 침대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곳이 우리 외할매와 나만의 비밀 공간이 되었던 것은 그 때부터였다. 할매는 싱싱하고 탐스럽게 익은 노을빛에 잘 익은 홍시 하나를 가져오셔서는 나를 할매 앞에 앉혀놓고는 할매 등만큼 구부러진 빛바랜 은수저를 꺼내오셨다. 그리고‘딱 소리가 나게 홍시의 뒤꽁무니를 빼어내 던지시고는 -아, 어릴 적 내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연한 홍시 껍질을 사정없이, 그것도 1초 만에 연꽃 마냥 벌려 놓으셨다. 내가 감탄사를 연발하면 할매는 그 수저로 송시의 살을 한 움큼 퍼서 내 입에 “쏙”하고 넣어주시는 거였다. 그 때만큼 내가 행복할 수가 없었었다. 할매의 손에 스스슥 풀어진 홍시들이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아도 입 한가득 퍼지던 그 해 감향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 후 내게 참 불행한 일이 생겼다. 우리 집이 큰 집과 많이 떨어진 먼 거리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할매를 보러가는 시간은 더 줄어들게 된 것이다. 나 또한 점점 고학년이 되면 될 수록 할매를 찾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됐으니까.
당시 새로 이사한 집엔 친할머니도 함께 살고 계셨다. 몸이 편찮으신 친할매께서는 사실 우리 외할매께서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정말 오랜 가뭄 끝에 오는 시원한 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외할매가 몇 일간 우리 집에 놀러 오신다는 것이었다. 할매를 본다는 설렘도 잠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외할매를 본 순간 난 할매에게 활한 웃을 보일 수가 없었다. 척 보기에도 예전처럼 정정하신 못급은 어디에도 없는 뼈만 앙상하신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뼈만 앙상하신 몰라보게 여윈 모습으로, 한손에는 00슈퍼라고 써진, 여러 칼라로 이루어진 색색의 과자들이 꽉 차 있는 노란봉투를 들고, 그 활한 웃음을 짓고 서 계셨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운 나머지 할매의 짐을 받는 것도 잊은 채 할매를 와락 껴안고 왜 이제 오셨나며 괜한 핀잔을 놓았다. 오랜만에 할매를 본 나는, 그러나 달라진 우리 할매를 보며 그 두 손을 꼭 잡고 할매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검은 눈, 깊숙이 패여 슬픈 눈.
저녁 시간, 가족 모두가 밥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도 우렁차게 젓가락질 하시던, 우리 엄마에게 큰 소리로 잔소리 하시던 할매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저 입가에 여린 미소만 띄우신 채, 미역국에 밥만 말아 다른 반찬은 아니 드시고 그것만 꾸역꾸역 드셨다.
“이젠 밥 먹는 것도 예전 같지 않구나. 힘이 들어. 그래도 우리 새끼들은 밥이랑 반찬이랑 많이들 먹고 쑥쑥 자라 건강해야 한다.”자신의 몸 상태가 어떻든 우리 손녀들의 건강을 챙기시려는 우리 외할매 모습을 보면서 난 그날 처음으로 밥상 앞에서 눈시울이 붉혀졌다.
할매는 그로부터 며칠을 더 계시다 허리에 뒷짐을 지시고 가방 하나를 맨 채 짐을 옮기셨다던 대전으로 터벅터벅 쓸쓸히 돌아가셨다.
자동차가 더 많아지고, 사람들이 더욱 분주해진, 그리고 덩달아 우리 집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긴혼 전화통화로 할매의 소식을 가끔 전해 듣는 정도였던 나는 근래에 자주 삼촌들과 전화를 하셨던 어머니에게 할매가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학교생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바쁘게 생활하던 나는 마음으로만 할머니를 생각했고 쉽게 외할매를 보러 갈 수가 없어 답답해 했다.
그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자꾸만 누군가가 생각이 나는데 그게 누구인지 예감할 수 없었던, 엄마 무덤 떠내려갈까 서럽게 울던 개구리,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3월, 그 어느 날, 엄마에게 걸려온 셋째 외삼촌의 전화를 통해 할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난 조용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믿기엔 너무 일렀던 건지, 할매 돌아가셨다를 수백 번 마음속으로 되새김질 해 보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고, 이내 펑펑 쏟아지는 울음을 참아낼 수 없었다. 엄마보다도 더 서럽게, 아프게 울었다. 이상하게 누가 자꾸 생각나고 그리워지고 보고 싶었던 요 며칠 사이에 그게 누구였는지 이제야 깨달은 내 자신이 너무나 밉고 싫어서, 그렇게 내게 꿈에서라도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은 채 떠나가 버린 할매가 너무 미워서, 보고 싶어서…….
장례식에 붉어진 가슴을 억누른 채, 그렇게 참석을 하고 시간은 또 무섭게 흘러가 어느 새 고등학생인 지금. 그 붉은 가슴을 남기고 떠나간 할매가 미치도록 그리워질 때가 있다.
청아한 가을 하늘, 빨간 고추잠자리가 자기를 따라오라 유혹하는 그 가을 날, 내 작은 곳 구석구석 하나하나까지 보듬어주던 다정한 할매 맘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드넓은 하늘과 할매의 깊게 패인 검은 눈동자 같이 아득하게 높은, 그 속에 꼭 할매가 내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은 슬픈 하늘이 미소 짓고 있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엄마와 손을 꼭 잡고 하얀 꽃 한 아름을 들고 할매가 계시는 벽제 납골당으로 찾아간다.
이번 가을, 할매한테 찾아갈 때는 하얀 꽃이 아닌 할매 좋아하고 나 좋아하던 빨갛게 익은 홍시 하나 사들고 할매한테 찾아가고 싶다. 가서 하매와 못 다한 애기도 나구고 은수저도 빼놓지 않고 챙겨가 할매처럼 연꽃 모양으로 깔수는 없지만 홍시살 한 움큼 퍼 할매 앞에 드리고 싶다.
할매는 마지막 순간에도 내 얼굴이 보고 싶다고 하시곤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래서 할매의 마지막 말이 난 기쁘다. 할매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러 갈 수 있으니까.
얼마 전 엄마가 홍시 하나를 사들고 오셨다. 그 홍시는 맛이 없었다. 할매 앞에 가면 난 이애기를 꼭 해주고 싶다. 아니 해 줄거다.“할매,할매 잘 지냈어? 얼마 전에 우리 엄마가 나 먹으라고 홍시를 사왔는데, 글쎄 너무 맛이 없는거 있지? 난 어릴 적에 할매,그 투박한 손으로 척척 까서 내 입에 그득하게 넣어주는”할매표 홍시“가 이세상세서 제일 맛있었는데. 할매, 보고싶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할매가 너무 보고 싶어, 할매 잘 지내고 있는 거지요?? 할매요, 꿈에서라도 꼭 한번 할매 얼굴 다시 한번 보고 싶습니다. 할매 그립습니다. 진정으로. 그리고 이 붉은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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