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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분 당선작-청송상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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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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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상
함성
손지연(정의여자고등학교)
햇빛 한 줄기가 창문 틈 사이로 가느다랗게 내 어깨 위를 비추고 있는가보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너무 눈이 부셔서 느낌만으로도 아침을 알 수 있다. 유난히 일어나기 어렵지 않은 아침이었지만 괜스레 미간을 찌푸리며 이불을 걷었다. 너무 조용히 시계 초침소리가 내 귓속에서 째깍째깍 거렸다. 1초, 2초. 아침이 이렇게 조용해진 것, 이젠 익숙해져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매우 일상적으로 아침을 먹으며 창 밖 아이들의 등굣길을 멍하니 보다가, 오늘은 창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예전의 나는 학교 가는 길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궁금해졌다.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들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고작 목소리로 말만할 수 없는 것 뿐인데 이렇게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다니……. 창문에 귀를 기울이니 즐거운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귓가엔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 뿐 이었다. 귀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이 느낌. 내 입을 벌려 목소리를 낸다는 것, 또 그 소리를 목을 통한 울림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이젠 그 느낌은커녕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한지 조차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떨땐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쓸모없고 부끄럽게 느껴져 ‘할 말도 못하면서 왜 사나’하는 생각에 말하고 싶은 그 억누를 수 없는 기분으로 목을 세게 누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너무 화가 날 때면 내 목을 잡고 쥐어뜯었다. 처음부터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미칠 듯이 답답한 느낌도 들지 않을텐데.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 건지 나는 말하기를 포기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화가 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수화를 배우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엄마가 사준 두꺼운 책 표지에 쓰여 있는<수화는 제2의 언어>라는 문구도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의미 없는 인사치레 정도로 느껴졌다. 세상이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한가지의 위로가 고작 수화라니. 나는 정말 수화를 배우느니 차라리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평생동안.
그러던 나에게 어느 날 엄마는 라이올린을 한 대 사왔다. 말하지 않을거면 차라리 연주라도 해서 내 기분을 알리라는 것이다. 피아노 선생님인 엄마에게 딱 맞는 발상이다 싶었지만, 나에겐 크게 못 미더운 존재였다. 긴 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도 없고 하나하나 음정을 잡기도 힘들었던 때였다. 내 손가락은 아직 도를 짚고 있는데 마음은 벌써 미파솔이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내 목소리는 아무리 말하려고 해도 멋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지만, 바이올린은 활을 긋는 수가 많아질수록, 내 왼손가락 끝이 닳아질수록 나를 기쁘게 했다. 내 목을 통해 느껴지는 또 하나의 목소리로.
처음 내가 엄마 앞에서 연주한 곡은 스즈키 1권에 있는 미뉴에트였다. 엄마는 내가 연주를 마치고나자 큰 감동이었는지 나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절대 니 자신을 숨기지 말아야돼, 알겠지? 이렇게 하나씩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거야…
나를 숨기지 말라는 엄마의 눈물은 바이올린의 현을 타고 내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 연습할수록 나아지는 나를 보며 재미 붙인 나는 포기하지 않고 스즈키를 다 떼고 어느새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모차르트, 바하를 넘나들며 바이올린을 켜는 내 모습은 조금씩 당당해져갔다.
-이건 샤콘느 G단조라는 곡인데, 이제 이 정도 대곡은 너도 연주 할 수 있을 때가 된 것 같다. 이 곡은 ‘지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는 부제를 갖고 있어. 바하의 곡은 연주하는 사람은 물론 나이에 따라, 기분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달라지거든. 그래서 바이올리니스트들도 바하의 곡은 어려워해. 네가 이 곡을 가장 슬프게 연주할 수 있을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 선생님도 아직 거기까진 해보지 못했어. 우리 같이 해보자.
지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나보다 더 슬픈 기억을 갖고 있는 곡이 있을까. 처음에 현란한 단조 화음으로 시작되는 샤콘느는 나에게 잊고 있었던 목소리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말할 수 없어서 느꼈던 슬픔과 분노. 아무도 나를 벙어리라 놀리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경계선 안에 그어 놓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했던 나를. 나는 내가 느꼈던 답답함과 가슴속의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터트리며 곡을 연주했다.
왼손의 기교가 빨라졌다가, 오른손의 활놀림이 바빠졌다가, 강하게 끊임없이 눌러 흔들어야 하는 비브라토는 작아졌던 내 평범한 일상을 한순간에 증폭시켜 놓고, 피아노 시모, 피아노, 메조 포르테, 포르테로 갈수록 강한 힘이 내 목을 뚫고 저기 저 끝까지 쭉 뻗쳐올랐다. 목에서는 핏줄이 느껴짐과 동시에 내 성대가 단단해지고 숨을 쉴 수 없게 숨통이 22인치로 나를 졸여왔다.
-아!!!
활을 멈추자 내 목소리인지 바이올린인지 분간할 수 없는 바람이 느껴졌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지금…말을 한거야? 바하 아저씨, 제가 지금 샤콘느를 부른건가요? 감각 없는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나는 그제서야 놀란 듯 베란다로 뛰쳐나갔다.
-아아아아아아아!
함성. 누군가 시끄럽다고 소리쳐도 좋아. 지금 이 순간, 내 목소리로 힘껏 지른 함성은 내가 그동안 서러웠던 답답함, 분노, 억울함, 너무나도 큰 슬픔으로 나를 대신해 쉬지않는 함성으로 퍼지고 있었다. 이젠 내 차례다.
-나를 숨기지 말고 함성을 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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