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대학교에 갓 입학한 A씨는 교내 한 동아리의 신입생 모집 책자를 받고 무척 당황스러웠다. ‘게이’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책자 앞면을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B씨 또한 신입생 때 학교 내에 걸려있는 성 소수자 관련 동아리의 현수막을 보고 당황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이야기 하기 괜히
꺼려지는 내용의 현수막이 정문에 떡하니 걸려있으니 당황스러우면서도 파격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번 쯤 보았을 법한 성소수자 관련 동아리 포스터들.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력하는 대학교 동아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요 10개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는 공식동아리
2013년 현재, 서울 주요 대학교 10곳 중 9개의 학교에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다. 이 중 5개가 학내 정식 동아리로 활동 중이다. 고려대 성소수자 공식 동아리‘사람과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과 사람은 1995년 9월에 결성된 동아리로 2003년 학내 동아리 연합회의 정식 동아리 인준을 받았다. 동아리 내 활동가(동아리원을 부르는 말)들이 모여 개강총회, MT 등의 행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타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과 연합해 친목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책자 ‘퀴어가이드’를 발행해 *퀴어 이론이나 차별 반대의 목소리를 학내 학생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고려대 재학생은 “대다수의 학생들이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과 사람’이 활발히 활동함에 따라 학내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에는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인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이하 변날)가 활동하고 있다. 변날은 2001년에 시작된 단체로 2002년, 학내 정식 자치단위로 인정받았다. 변날은 동성애자와 관련된 퀴어 영화제나 강연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변날의 일원인 활동가 보리는 “한국레즈비언 상담소에서 제공하는 상담활동가 교육 자료를 제공받아 공부하고 있다”며 “정체성 고민은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고민에 귀기울이는 일밖에 하지 못하지만 이러한 행동만으로도 학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학교 내 성소수자 동아리는 타 대학 동아리와 연합해 활동하기도 한다.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이 연합해 [결]을 결성했다. [결]은 2011년 3월에 발족한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대학모임’이 개편돼 설립된 것으로 외모, 성적지향, 질병 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결]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강연회 개최했고 동성애 차별백서라는 책자를 발간했으며 매년 퀴어 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결]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정은 “2012년, 연세대학교 영자신문사 애널스가 동성애와 관련해 부정적인 주관이 개입된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당시 [결]은 애널스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며 “이처럼 동성애자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친목도모를 위한 비공식 동아리도 있어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가 모두 공식 동아리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아웃팅* 방지와 친목도모 등의 이유로 인해 비공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앙대의 성소수자 모임인 ‘레인보우 피쉬’가 그 중 하나다. 1993년 친목 모임으로 시작한 레인보우 피쉬는 2001년 본격적으로 동아리 활동 시작했다. 이후 LGBT 영화제, 인권 캠프를 주체적으로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있다.

하지만 학교의 중앙 동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동아리원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공식 동아리로 운영 중이다. 서울에 위치한 모 학교의 성소수자 동아리 운영자 또한 “성소수자 인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자유로운 친목 도모를 위해 결성됐다”며 모임의 자세한 정보 공개를 꺼려했다.

◆문화제 개최부터 사전 수정 운동까지
대학생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제고와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화여
대의 변날은 2003년부터 레즈비언 문화제를 개최해왔다. 올해로 11번째를 맞은 레즈비언 문화제는 지난 11일(월)부터 15일(금)까지 총 5일에 걸쳐 진행됐다. 문화제 기간 동안 이화여대 학생문화관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응원메시지를 적는 등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부스가 꾸며졌다. 또한 변날의 소개와 교환학생 인터뷰, 세계 결혼 합법화 동향 등의 내용을 담은 자료집이 배부됐다.

11일(월), 한양대학교 성소수자 모임인 ‘한양 LGBT인권위원회’와 서강 퀴어 자치연대 ‘춤추는 Q’의 활동가들이 ‘성소수자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토크쇼에 패널로 참석했다. 변날의 활동가 마루는 “성소수자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고민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제를 찾은 허지혜(여‧26)씨는 “이화여대가 기독교재단의 학교이지만 재학생이 모두 기독교인인 것은
아니다”며 “이화여대가 동성애에 배타적인 기독교 재단의 성격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자의 인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문화제 행사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몇몇 대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했다. 2012년 5명의 경희대 재학생들은 표준국어대사전에 기록돼 있는 ‘애인’과 ‘연애’의 정의를 바꿨다. ‘시민교육’ 수업시간에 처음 만난 학생들은 수업과제의 주제를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제도의 변화’로 정하고 이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으로 성소수자에게 해당되지 않는 언어들에 주목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기록돼 있는 애인의 뜻은 ‘이성 간에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연애는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애인’과 ‘연애’의 정의를 개정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 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정의 개정에 대한 네티즌들의 청원을 작년 6월 국립국어원에 전달했고 마침내 2012년 11월, 경희대 학생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결과적으로 연인의 뜻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으로 바뀌었고, 사랑은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로 정의됐다.

공식기관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성소수자 동아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의 인권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움직임 역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성소수자를 위해 힘쓰는 그들의 노력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퀴어(Queer): 성적 소수자(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
아웃팅(Outing):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 폭로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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