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민승지 기자(alstmdrl@naver.com) , 사진출처 SBS, MBC,  tvN 홈페이지
     
 
   
 

비록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와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 마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드라마들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두 드라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동성애 코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오로라 공주>에서는 이미 동성연인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응답하라 1994>에서는 지난 2일 방영된 6화 이후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빙그레라는 인물이 동성애자로 추측되고 있다. 이렇듯, 동성애는 더 이상 우리에게 먼 존재가 아니다. 리모컨을 들고 TV를 틀면 그 곳에 동성애가 있다.

 

◆ ‘건강하지 못한 정서’에서 서서히 바뀐 시선
동성애 코드는 1995년, 처음 TV 드라마에 등장했다. 의문의 여대생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았던 <째즈>(SBS)와, 한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두 여자의 사랑>(MBC)이 전파를 탔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한겨레 신문은 당시 이 두 드라마를 다루는 기사에서 “동성애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하면서도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사회의 합의는 아직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텔레비전에서 일상적으로 다루며 확대재생한 해도 좋을 만큼 ‘건강한 정서’는 결코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또한 “정신의 퇴폐현상이자 세기말 현상”이라는 표현으로 동성애 드라마가 등장하는 당시 상황을 비판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다다르자 시선이 서서히 바뀌었다. 중년남성이 젊은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슬픈 유혹>(SBS,1999)가 방영될 당시, 동아일보는 이 드라마에 대해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사람간의 진정한 대화와와 ‘어루만짐’의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한 극적 수단으로 동성애를 사용했다는 해석이 타당할 듯하다”며 드라마 소재로서 적절히 동성애를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4년 전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한겨레 1999년 ‘동성애, 천형입니까’라는 기사를 통해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사회에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이후 남성 동성애자들의 이야기가 작품 말미에 반전으로 등장하는 <연인들의 점심식사>(MBC,2002)과 같이 동성애 코드는 꾸준하게 단막극에서 주로 사용돼왔다.

◆ 단막극 넘어 장편 드라마로
2000년대 후반부터 장편 드라마에서 동성애 코드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들은 동성애 코드를 간접적으로 이용하며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남장여자 이야기다. 남장여자인 여주인공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남주인공이 괴로워하다 결국 그 정체를 알게 되는 이야기인 <커피프린스 1호점>(MBC, 2007)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모았다, 이후 비슷한 이야기구조의 <바람의 화원>(SBS, 2008), <미남이시네요>(SBS, 2009), <성균관스캔들>(KBS, 2010)가 방영됐다. 남장여자는 아니지만 남주인공을 동성애자로 착각해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개인의 취향>(KBS,2010) 또한 동성애 코드를 간접적으로 이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드라마에 동성애 코드가 전면적으로 나타난 것은 <인생은아름다워>(SBS, 2010)에서 였다. 의사와 사진가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 동성연인이 전면에 배치된 드라마는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단체의 항의를 받았으나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에는 <시크릿가든>(2011-2012,SBS), <응답하라1997>(2012, tvN), <응답하라 1994>, <오로라 공주> 등에서 남녀주인공 주변 인물에 동성애자인 인물이 등장했다.

◆“동성애 드라마에는 거부감 없지만...”
동성애 코드 드라마가 많아지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 또한 과거에 비해 적어졌다.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 또한 과거에 비해 변화한 것일까?

평소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청자층에는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원진하(22·여) 씨는 “사실 동성애자들이라 하면 나와는 다른 사람처럼 여겼던 것이 사실이었다”며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모습을 보면 (이성애자인) 나와 다를 것 없는,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인상 깊게 봤다는 박용환(24·남) 씨는 “처음에는 남성 동성연인이 등장하는 드라마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드라마 상 동성연인이) 커밍아웃 후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 (동성애자들에 대해) 기존에 무조건적으로 가지고 있던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사람들도 있다. 김지은(22·여) 씨는 “<응답하라 1994>의 빙그레나 <응답하라 1997>의 준희와 같이 동성애 코드를 지닌 인물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 동성애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응답하라1997>에서는 ‘동성애’라는 것이 예를 들어 상대를 아련하게 바라보거나 상대를 신경 쓰는 행동 등으로 나타난다. 성적인 행위들에 대해 거부감 들지 않을 적정선의 모습들만 보여줘서 드라마를 시청하는 입장에서 괜찮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모(22·남)씨 는 “(동성애 이야기가) 드라마를 전면적으로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아니고, 남녀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으나 이 자체가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인 태도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외적으로 매력적인 동성애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볼 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소희(21·여) 씨는 “TV에 나오는 동성애자들은 모두 모델 같은 키와 외모를 지니고 있다”며 “그들의 모습이 멋있기 때문에 그들이 동성애자여도 드라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동성애자인 인물을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외모가 멋진 인물로 인식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별 거부감 없이 시청한다는 것이 곧 동성애에 대한 긍정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음 속 거리는 여전히 멀어
이렇듯 미디어에 나타난 동성애의 표현 범위는 넓어진 반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범위는 넓지 않다. 실제로 <인생은 아름다워>는 방영 중 교회에서 서약을 하는 남성연인들의 모습을 촬영했음에도 종교단체의 반발로 방영되지는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이후에 동성연인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없는 것 또한 동성애가 중심이야기가 아닌 주변이야기로만 소비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지난 7월 제정이 좌초된 차별금지법 논란에서도 드러났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이유 없는 차별을 없애고자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은 2007년, 2010년에 이어 지난 7월까지 세 번 연속 철회됐다. 철회의 핵심에는 차별금지대상으로 정한 ‘성적 지향’에 대해 격렬히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단체들이 있었다.

드라마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동성애자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좁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마음 속 거리’는 여전히 먼 듯 하다. 그 거리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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