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명여고문학상
콩트부분 당선작-청송2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7.04.0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콩트 청송

가족회의

김기혜 (안양예술고등학교 )

오빠가 돌아왔다. 나갈 때는 여기저기 멍이 든 채 절룩거리며 쫓겨났지만, 돌아왔을 때는 내가 본 어떤 남자보다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이었다. 오빠의 옆에는 제법 예쁘게 생긴 여자애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나는 여자애의 부스스한 파마머리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싼 티 나게 생겼어.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엄마는 김치전을 부치다말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길수가 돌아왔어요. 엄마의 목소리는 당황과 흥분으로 높아져있었다. 엄마가 전화를 하는 동안 여자애는 허겁지겁 김치전을 집어먹었다. 오빠는 여자애의 팔을 붙들고 지금은 내 방이 된 예전의 오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여자애는 여전히 두 손에 김치전을 쥔 채였다.
엄마는 전화를 끊고 그 새 타버린 김치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후라이팬에 새로 기름을 두르는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으나 뒤집개를 든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전 좀 몇 개 오빠 갖다 줄래. 엄마는 여자애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전이 담긴 접시를 들고 방문을 빼꼼히 열었다. 노크해! 여자애 볼에 뽀뽀 중이던 오빠가 소리쳤다. 말과는 달리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내 방문을 내가 노크하라는 건 좀 어색했지만 나는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접시를 내밀었다. 생각대로 여자애가 낚아챘다. 나는 입에 게걸스럽게 전을 밀어 넣는 여자애를 가리키며 물었다. 누구야? 오빠가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네 새언니. 오빠가 여자애 머리를 툭 치자 여자애가 먹다말고 고개를 들어 건성으로 인사했다. 네가 진희구나, 잘 부탁해. 입가에 기름이 번들거리는 채 여자애가 웃었다. 나는 그 여자애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오빠가 무서워 억지로 웃어주고 방문을 닫았다.
엄마가 남은 반죽을 전부 부쳤을 때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가서 문을 열고 말했다. 다녀오셨어요. 문 앞에는 아빠가 서 있었다. 가방 좀 안방에 갖다 놔라. 가방을 내미는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빠가 신발을 벗는 동안 나는 재빨리 가방을 갖다 두고 나왔다. 오빠는? 내 방에. 아빠는 소매로 연신 땀을 닦아냈다. 가서 거실로 나오라고 해라. 가족회의를 할 거야. 말을 마치고 아빠는 소파 쪽으로 가서 털썩 앉았다. 나는 아빠가 쓰러진 건 아닌가 걱정이 됐지만 엄마가 와서 아빠의 양복 자켓을 벗기며 말했다. 가서 오빠 불러와. 문틈으로 여자애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야, 오빠. 왜? 가족회의를 하겠다. 오빠가 문을 반쯤 열고 말했다. 곧 가겠다고 전해. 오빠의 얼굴에선 당황하거나 겁먹을 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빠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족회의는 으레 오빠의 말썽이 발단이 됐다. 학교에서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전화가 오고나면, 아빠는 잔뜩 굳은 얼굴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오빠는 기가 죽은 얼굴로 소파 끝 쪽에 앉았고, 아빠는 다른 쪽 끝에 앉아 오빠를 보고 있었다. 나와 엄마는 사이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폭풍 전의 고요. 아빠는 이유를 물었다. 흡연, 싸움질, 땡땡이, 나쁜 성적 등이 주로 거론됐다. 오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빠는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화를 냈다. 오빠는 여전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화를 못 이긴 아빠가 손찌검을 해도 말없이 맞았다.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만 간간히 흘러나왔다. 나와 엄마는 베란다로 나가서 줄담배를 피웠고, 엄마는 널브러진 전화기나 재떨이 등을 치웠다. 회의는 늘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끝이 나고는 했다.
오빠가 방에서 나왔다. 엄마와 나는 이미 소파에 앉아있었다. 오빠 뒤로 여자애가 따라 나왔다. 아빠는 여전히 눈을 감고 쓰러지듯 몸을 기댄 채였다. 소파는 한자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빠는 그 자리에 여자애를 앉혔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소파가 흔들리자 아빠가 눈을 떴다. 여자애와 눈이 마주친 아빠가 오빠를 보고 물었다. 얜 누구냐? 제 여자입니다.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 따위는 없는 당당한 말투가.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오빠에게 화를 내며 꽃병을 집어던질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불쑥 일어서더니 꽃병과 유리그릇을 부엌에 갖다놓고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가 소파에 앉았을 때 아빠가 입을 열었다. 왜 돌아왔냐. 다행히 아빠는 아직 화를 참고 있는 듯 했다. 애랑 살림을 차리려는데 돈이 없어서요. 너 같은 놈에게 줄 돈은 없다. 아빠는 단호했다. 오빠는 능글맞게 웃었다. 제 앞으로 부어둔 적금, 그거 주시면 앞으로는 손 벌리지 않겠습니다. 엄마가 소리쳤다. 그건 네 대학 등록금이야! 대학 안 갈겁니다. 아니, 못가요. 공부는 진작에 때려치웠습니다. 엄마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재는 뭐하는 얘냐? 아빠가 물었다. 아빠의 얼굴이 점점 시뻘개지고 있었다. 제가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아니, 그거 말고. 부모님은 뭐하시는 분이냐? 고아입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가 전에 없던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오빠는 여전히 히죽거리고 있었다. 제가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오빠는 다시 한 번 반복했다. 그리고 제 아이를 가졌어요. 저는 애랑 결혼 할 겁니다. 오빠가 이렇게 많은 말을 쏟아내는 건 처음이어서, 나는 내내 조용히 오빠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새 언니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오빠의 아이라니!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여자애를 보았다. 배를 쓰다듬는 여자애는 자랑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놈! 아빠가 오빠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놀란 여자애가 비명을 질렀다. 엄마는 아빠를 말리기 위해 팔을 붙잡았으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 때 오빠가 아빠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빠를 보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빠는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아빠도지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일방적인 징계는 싸움으로 변했고, 나와 엄마는 어느 쪽을 말려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오빠는 젊고 싸움경력도 남달랐던 반면, 아빠는 힘없는 중년이었다. 승리의 여신은 오빠 쪽으로 기울었고, 나와 엄마는 오빠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했다. 오빠는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엄마는 기어코 눈물을 보였고, 안방에서 통장과 도장을 챙겨왔다. 부모도 몰라보는 놈 같으니, 어서 가버려라! 다신 이 집에 발도 들여놓지마! 엄마가 소리쳤다. 오빠는 주먹질을 멈췄다. 통장은 여자애가 냉큼 받았다. 오빠가 맞을 때는 울상이더니 지금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빠는 히죽 웃었다. 또 오겠습니다. 입술이 터져서 피를 질질 흘리며 오빠가 일어섰다. 여자애가 옆에 찰싹 붙어 오빠를 부축했다. 둘은 천천히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오빠는 저번처럼 여기저기 멍이 든 채 절룩거리고 있었다. 나는 오빠를 붙잡고 싶었지만, 오빠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 움직일 수 없었다.
돌아보니 엄마가 아빠를 안방으로 부축해 옮기고 있었다. 아빠는 자신을 부축하는 엄마의 팔을 계속 뿌리쳤으나, 채 한발도 옮기지 못하고 다시 엄마에게 기댔다. 나는 아빠의 몸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붙였다. 엄마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아빠는 내게 술심부름을 시켰다. 내가 집 앞 가게에서 소주 두 병을 사왔을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잔소리를 해야 할 엄마는 묵묵히 김치전을 데웠다. 혼자서 한 병을 다 비우는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아빠는, 두 번째 병을 비우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세상 말세야. 나는 아빠의 주사를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내 방은 여자애가 먹다 흘린 김치전 부스러기와 오빠 몸에서 떨어져 나왔을 모래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어렴풋이 오빠 냄새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불과 한시간 전 이 방에서 뽀뽀를 하고 있던 오빠와 여자애가 생각났다. 내가 알던 오빠가 아니었다. 모르는 남자. 타인. 나는 우리집을 뒤집어놓고 가버린 낮선 남자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문 틈으로 아빠의 주사가 들려왔다. 세상 말세야, 세상말세야...


숙대신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스포츠와 만난 여성, 위밋업스포츠
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의 돌파구, 과학과 사람에게 찾다
3
입학금 반환 요구 지속··· 본교 "대안 마련하겠다"
4
동물 유튜브, 귀여움을 팝니다
5
예술로 해석한 선거, '새일꾼 1948-202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 : 강정애 | 편집인 겸 주간 : 육성희 | 편집장 : 한예진 | 발행처 : 숙명여자대학교|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애
우)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100 숙명여자대학교 숙대신보사
행정실 ☎ 710-9150 (Fax) 706-2695 / 편집실 ☎ 710-9721 / 9152
Copyright © 2020 숙대신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mnews@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