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청송
<잃어버린 밤>
김소라(정의여자고등학교)
어느 집이나 저녁의 풍경은 비슷할 것이다. 한 두 그릇의 밥과 국을 사이에 두고 텔레비전을 보며 그날 하루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설령 맹물에 말아먹는 밥이라 할지라도 꿀맛같이 달콤할 것이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가족은 다섯이었다.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애완견 한 마리.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엔 각자가 너무 바빴고, 언제나 혼자 또는 둘이서 식사를 해 왔다. 얼굴 한 번 들여다보기도 바빴지만 밤에는 모두 모여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비디오를 보며 토론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조정해 가며 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했다.
족발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엄마는 족발을 자주 주문했다. 거의 자정이거나 자정을 넘긴 시간에 족발을 시켰기에, 우리 남매는 엄마가 족발을 주문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면 저녁밥도 굶으면서 아빠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아빠가 일찍 오시면 족발을 더 빨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여덟시만 되면 아빠의 귀가를 재촉하는 전화를 번갈아 걸기도 했다. 보채고 떼를 써 가며 겨우 족발 한 입 먹게 되었을 때 그 맛이란!
족발이나 보쌈같은 야식을 먹지 않는 날에는 귀가하신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는 것이 우리 남매의 임무였다. 살살 때로는 세게 엄마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주무르며 엄마 뱃살도 한 번 만져보고, 그동안 잊고 있다가도 엄마냄새를 맡으면 어리광부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와 동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워계신 엄마의 팔뚝을 붙잡고 뒹굴었다. 엄마가 잠드실 때까지 팔다리를 주무르는 것은 어린 나와 동생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일단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약간의 수고비와 엄마 아빠의 대견해하는 모습이 포상으로 주어졌다.
때때로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동생과 내 방을 뒤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동생과 나는 사생활의 보호를 주장하며 대들기도 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에게 대든다고 회초리를 드셨다. 한바탕 혼쭐이 난 다음 각자의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리며 엄마를 저주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엄마는 방문을 열고 다가와 쓰다듬어 주며 대화를 청했다. 너희가 담배같은 물건을 갖고 있는지 일기장을 보며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해서 너희가 싫어하는 줄 알지만 이러는 거라고 다 너흴 위해서라고.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어 주셨다.
부모님은 바쁘신 분들이었고 특히 엄마는 더욱 바빴다.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엄마는 각종 미용협회와 세미나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어느날부턴가 엄마는 집에 오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세미나에 가신 줄로만 알았다. 세미나는 길어졌다. 한 달 두 달…. 엄마는 동생도 나도 학교에 간 사이에 집에 와서 옷가지를 챙겨 가곤 했다. 잔소리꾼 엄마가 없다고 동생과 나는 즐거워했다. 용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엄마의 다리를 몇 시간씩 주무르지 않아도 되고 몇 시간이든지 컴퓨터 게임을 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즐거움은 잠시였다. 엄마의 보살핌이 사라지자 화초들이 시들해졌고 곧 말라버렸다. 아빠도, 동생도 점점 시들어갔다. 이글거리는 태양 때문에 늘어져버린 화초를 위한 밤은 사라져 버렸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때론 영영 되찾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잃어버린 것으로 사람을 책망할 수도 없다. 단지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가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되찾은 밤이 찢겨져 절반만이 남았다고 해도,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아직 아빠의 족발맛과 엄마의 살내음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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