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여대 처음 뿌리내려 남녀공학에 비해 선호 덜 해…학점경쟁과 선후배관계에 불만, 여성 맞춤 서비스에는 만족

수능이 끝남에 따라 본격적인 대학지원 시기가 시작된다. 다양한 전략으로 대학을 지원하지만, 여학생들에게는 한 가지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한 모 교사는 “아무래도 여대를 가는 것 보다는 남녀공학을 지원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김 모 교사 또한 “상위권 여대를 제외하고는 같은 점수대에 남녀공학과 여대가 있다면 여학생들이 지원을 꺼
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대구 카톨릭대, 상명대, 신라대 등이 남녀공학으로 전환됐다. 최근에는 성신여대에서 ‘성신대’로 교명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후 교명변경이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기사가 게재됐으나 이는 곧 오보로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2013년 현재 전국의 4년제 여대는 본교를 포함해 7곳이 남아있다.

       

◆유일한 여성교육기관이었던 여대
초기 여대는 교육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 중심의 사회관에 예속돼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일부 상류층 가정의 여성 자제만이 한글을 익히는 정도의 범위 내에서 교육을 받을 뿐이었다. 19세기 후반 개화사상이 사회 전반에 퍼져 여성 교육을 제한했던 유교적인 전통교육제도가 폐지됐다. 이는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인식시켰고 근대적
여성교육기관이 나타나게 됐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근대 여성교육기관은 1886년에 설립된 이화학당이다. 미국북감리교 여선교사인 스크랜턴이 선교사업과 여성 신교육 전파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이화학당은 이후 1945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돼 오늘날의 이화여자대학교가 됐다. 최초의 근대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에 이어 1년 뒤 사립여학교인 정신여학교가 설립된다. 이화학당과 마찬가지로 미국인 선교사 엘레스가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정동 여학당이란 이름의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1899년에는 조선여성이 설립한 최초의 여학교인 순성여학교가 설립됐다. 본교의 전신인 명신여학교는 1906년 고종의 계비인 순헌황귀비가 궁궐터와 설립자금을 지원하여 세워졌다.

여성들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서 근대 여성 교육을 담당했던 여대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46년부터였다. 헌법에 명시된 남녀동등권 실현을 위해 연세대학교가 1946년에 처음으로 여학생들의 입학을 허락했다. 이후부터 남녀공학학교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여대가 교육받고자 하는 여학생들의 유일한 교육기관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학생들이 여대가 아닌 남녀공학학교에서도 수학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여학생들은 보다 넓은 선택의 폭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대의 선호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 이에 숙대신보는 여대에 재학 중인 A, B와 남녀공학 대학에 재학 중인 여학생 C, D에게 여대와 남녀공학의 차이에 대해 들어봤다.

◆학점경쟁과 선·후배와의 느슨한 관계
A와 B는 모두 “여대를 처음부터 지망하진 않았고 수능성적에 맞춰 여대에 지원하게 됐다”며 “비슷한 수준의 남녀공학을 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지목됐다. A는 “오전 8시 수업에 결석하는 학생들을 보기 드물다”며 “성적에 민감한 여대의 특성 때문에 너무 열심히 해서 부담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남녀공학학교에 재학 중인 C는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인 경험
에 비춰보자면 여학생들 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 남학생들이 있어서 저학년의 경우 학생들 간의 학점 경쟁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점 경쟁과 더불어 여대의 대인관계 폭이 좁다는 점 역시 여대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남녀공학학교는 여대에 비해 선·후배 간의 관계가 밀접한 경향이 있다. 남녀공학학교 학생인 C는 “새내기 배움터 담당 선배가 아니라도 바로 윗 학번 선배들 대부분이 새터에 참여했다”며 “새터나 다른 활동을 통해 선·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 서로 친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녀공학 대학에 재학 중인 D 역시 “학생회나 동아리에 소속되지 않았는데 과방에 있다 보니 과방에 자주 오는 선·후배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여대 재학 중인 A는 “선·후배가 함께 만나는 술자리나 모임이 없고 운동회나 학과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참여율 역시 저조하다”며 “남녀공학학교는 선·후배가 함께 모이는 기회가 많아서 부럽다”고 말했다. B 또한 “학생회 소속이 아닌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며 “선·후배 간의 돈독한 관계를 갖지 못하는 점이 아
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동문파워’가 부족한 것도 여대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지목하기도 한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할 때 여대 출신 네트워크 보다 남녀공학학교 출신 네트워크가 더 넓다는 것이다. 이는 여대와 남녀공학 대학 간 선·후배간 결집력의 차이도 있지만, 고위직에 진출해있는 여성의 수가 적은 점도 모든 졸업생이 여성인 여대에게 불리한 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여성가족부의 ‘중앙부처 여성 고위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여성 고위공무원은 4%의 비중을 차지했고 총리실, 기획재정부 등 28개 부처에는 여성 고위공무원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이 고위직을 맡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남성을 포함하고 있는 남녀공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대의 학생들이 동문파워를 경험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한국경제 기사에 따르면 대구가톨릭대 관계자는 “남녀공학으로 바뀐 후 동문이나 학과 범위가 확대되고 네트워크가 넓어진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중심교육과 리더십함양에 도움돼
그러나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 법. A와 B는 학교생활을 하며 느낀 여대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여학생에게 초점을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점”을 꼽았다. A는 “학교에서 시행하는 취업 관련 프로그램은 여성들이 취업할 경우 필요한 정보와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며 “특강을 담당하는 강사나 선배가 여성으로서 경험한 사회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강의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B 또한 “성에 관한 특강이나 여성 관련 수업이 마련돼 있어 사회생활을 할 때, 보다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여성 관련 특강에 참여하면 여성에 대한 자부심 또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리더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여대의 장점으로 꼽혔다. 남녀공학 학생인 C는 “팀플을 할 때는 보통 나이가 많은 사람이 리더가 되기 마련인데 대부분 남자 복학생이 있기 때문에 보통 남자들이 조장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는 총학생회장 선거에서도 나타난다. D 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동안 총학생선거에 출마한 선본은 모두 남남선본이었다” 고 말했다. C 또한 “보통 남학생이 총학생회장으로, 여학생이 총학생부회장으로 출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여대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이 남녀공학 대학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많은 것이다. 실제로 한국경제 신문 매거진 한경매거진에 따르면 30대 기업 여성 임원의 출신 대학으로 서울대와 이화여대가 22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국 7개 여대 중 주요 여대로 여겨지는 이화여대와 200개에 달하는 남녀공학학교 중 주요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의 여성임원의 수가 같았 던 것이다.

◆여성주체교육에 초점맞춰야
본교 정치외교학과 이화영 교수는 “완전한 양성평등이 이뤄진다면 여대가 굳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내에서는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에 대비해 다양한 능력과 경험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여대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인식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리더로서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고 말했다. 주체적인 여성교육이 남녀공학대학과 차별점을 둘 수 있는 부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여대에는 주체적인 여성교육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것이 여성학과의 유무다. 전국의 4년제 여대 7개 중에서 여성학을 학부과정의 과목으로 지정한 학교는 동덕여대 한 곳 뿐이며 이화여대만이 대학원에 여성학관련 석·박사과정을 갖추고 있다. 본교는 1980년대 ‘여성인권신장’을 이유로 여성학과를 폐지했다.

<한국 여자대학교의 존재 이유:남녀공학의 대안 혹은 경쟁자(나윤경,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부교수>)에 따르면 여대는 학생들에게 여성 역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나 재구성을 중점으로 교육해야 하지만 전공영역으로 여성학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남녀공학학교와의 차별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대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의 ‘여성’ 정체성을 부각시키고 여성주의적인 사회적 개입을 교육과정 속에 투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철학과 김혜숙 교수는 교수신문에서 “사회는 더 이상 여대를 보호의 대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며 “남녀공학 학교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여대는 한국 고유의 역사적 유물로 남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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