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가? 혹시 정신대라는 용어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위안부는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며, 정신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이므로 강제로 연행된 여성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목소리는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조사해봤다.

 

위안부 문제가 제기돼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위안부출신임을 밝힌 한 일본인 여성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성적 노예가 됐다는 한국인 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하면서부터다. 이 증언이 있은 후, 우리나라에서 1990년 11월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발족했다.


 1991년, 우리나라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임을 밝힌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정대협은 위안부 신고전화를 개설했고 이후 피해자들의 신고가 조금씩 이어졌다. 이어 1999년에 피해자공동생활공간인 ‘나눔의 집’이 세워졌다. 정대협의 활동과 함께 해방 45년 동안 은폐되어왔던 위안부문제에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 대사관 앞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내 최장기 집회인 수요시위가 대표적이다. 거리에서도 수요시위와 함께 무대와 스크린에서도 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양한 활동들이 나타났다. 광복 직후 고국으로 돌아갈 트럭을 기다리는 종군위안부 조선 여인 세 사람의 하루이야기를 담은 연극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는 1995년 초연한 이후 최근 2011년까지도 무대에 올려졌다. 다큐멘터리 분야에서는 수요시위와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배경으로 촬영한 변영주 감독의 <낮은목소리> 3부작이 대표적이다.

 위안부 문제는 생생한 사진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1998년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일본정부의 사과 및 배상을 촉구하기 위한 사진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최근 재일 한국인 사진가 안세홍씨가 8월에 도쿄에서 개최한 두 번째 위안부 사진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위안부 관련 다양한 활동들은 박물관 건립과 기념비 건립의 성과를 낳았다. 1998년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개관됐고,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에서 2011년 말 건립을 완료해 2012년 5월 개관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한인협회의 도움으로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위안부 희생자를 기리고 일본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2개의 군위안부 기념비를 건립했다.
 해외에서도 성노예 생활을 강요한 일본의 만행에 대해 사과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2007년에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유럽의회에서 채택됐다. 특히 미국은 2012년 8월 16일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하겠다고 밝혀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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