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자상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 그 이면 들여다보기

지난 달 24일,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영화 홍보사를 통해 수상작 <피에타> 상영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배경에는 황금사자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메이저 영화의 극장 독점과 교차 상영에 대한 문제와 창작자 우선의 제작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그의 뜻이 담겨있다. “극장 독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로서 배급사와 논의해 개봉 4주차인 <피에타>를 모든 극장에서 깨끗이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작은 영화’ 잡아먹는 대기업 독과점

  그가 지적한 영화계의 문제점은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다양한 영화의 공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영화산업은 이른바 3대 영화제작·배급사가 대형 멀티플렉스의 상영관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작년 영화산업 통계자료에 따르면 CJ 영화 사업부문(35.8%), 롯데엔터테인먼트(15.4%), 쇼박스(9.7%)의 3대 제작·배급사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전체의 60.9%에 이른다. 또 CJ 계열인 CGV 등 대형 멀티플렉스 3개사가 스크린 수와 좌석수의 70% 이상, 관객 수와 매출액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멀티플렉스 극장을 가진 대기업이 자신들이 투자·배급한 영화의 상영을 위해 스크린을 싹쓸이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또 대기업의 자본이 더 많이 투입된 영화일수록 대규모 홍보로 영화관을 해당 영화의 포스터로 도배하는 관행이 수년째 되풀이돼 왔다.

  이에 비해 독립영화의 경우 평균 제작비가 6천만 원, 홍보비용은 대략 500만 원 이하로 이는 상업영화의 1/30수준이다. 이 때문에 소규모 제작·배급사의 저예산 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작은 영화’ 대부분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내기도 한다. 힘겹게 상영되더라도 접근성이 높은 복합상영관이 아닌 작은 영화관에서 겨우 상영관을 확보한다. 또 그마저도 상영시간대가 띄엄띄엄 떨어진 교차상영, 일명 ‘퐁당퐁당’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내 독립영화 배급사인 인디스토리와 시네마 달의 영화는 많아야 전국 25개 관, 평균 20개 이내의 상영관에 걸린다. 영화제 수상으로 수요가 늘어난 <피에타>도 개봉 당시 흥행 영화에 밀려 교차상영으로 편성돼 관객들이 접하기 힘들었고, 김 감독의 과거작 2편은 아예 극장에 걸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피에타>를 관람한 본교 김경림(프랑스언어문화 12) 학우는 “<피에타>를 보기위해 상영 정보를 검색했을 때, 접근성이 떨어지는 작은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어 관람 결정을 고민했다”며 “뿐만 아니라 작은 극장에서도 상영시간이 띄엄띄엄 있어 영화시간을 정하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예정에 없던 ‘변칙개봉’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개봉한 <광해>의 경우는 개봉을 일주일 앞당겨 기존상영작들이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변칙개봉 사례다. 개봉 2주째였던 <공모자들>은 260개 중 200개관이 다른 영화와 교대로 상영되는 교차상영으로 전환됐고, 때문에 기존에 상영되던 <웨딩스캔들>은 일주일 만에 종영해야 했다. 또 <늑대아이>는 개봉 첫날부터 교차상영에 들어갔다. 관련업계에서는 <광해>가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인 CJ가 투자·배급한 영화였기에 가능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변칙개봉은 이뿐만이 아니다. 통상 개봉은 매주 목요일에 하는 것이 암묵적인 업계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CJ의 <R2B>는 화요일에 개봉했다. 이는 하루라도 개봉일을 당겨 누적관객을 늘리기 위해서다.

제작 과정상의 문제

  이와 같은 시스템적인 문제 외에도 다양한 영화의 제작·배급 과정에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감독과 제작사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영화제작 현장에서는 감독과 제작사와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영화 <미스터K> 제작도중 하차를 통보받은 이명세 감독, <남쪽으로 튀어> 제작 도중 제작자, 배우와의 이견으로 현장을 떠나야만 했던 임순례 감독, 그리고 <동창생>의 박신우 감독까지 하차가 이어지면서 영화 제작여건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은 지난 달 19일 제안서를 통해 영화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감독조합은 “요즘 들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영화감독의 해임 및 유사 사례들은 모든 영화인들에게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영화사에 사과요청 성명서를 제출했다. 또 “하루빨리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합리적 기준을 갖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

  이러한 어려운 영화계 현실에 대해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관계자들은 복합상영관에 소규모 영화를 의무비율로 상영하도록 하는 ‘독립·예술영화 쿼터제’ 실시와 독립·예술영화 전용 상영관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또 한 편의 영화가 스크린의 일정 비율 이상 상영되는 걸 제한하는 ‘스크린 독과점 방지법’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7월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저예산 영화에 최소 1주일 이상 상영기간을 보장하고 교차상영 등 변칙상영을 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을 발표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의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법적 방안을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영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대중들이 쉽게 독립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 영화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해마다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열려 독립·예술 영화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 한해에만 인디다큐페스티벌, 정동진독립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가 열렸으며 남은 하반기에도 서울독립영화제, 서울노인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관객이 예술·독립 영화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 있는 소규모 극장을 찾아가는 것이다. 아트하우스 모모, 인디스페이스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 곳에서는 국내외의 저예산 예술·독립영화가 주로 상영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축소로 인해 2006년부터 씨네코아, 명동 CQN 등 다섯 개의 소극장이 문을 닫았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하는 최낙용 부사장은 “대개의 예술영화관은 극단적 경영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아 있는 소극장이 영화의 다양성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가끔은 소규모 극장에서 신선한 영화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티켓 한 장이 ‘작은 영화’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재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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