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터 현재까지 권력에 아첨하는 자는 늘 존재해 왔다. 그러나 권력을 비판하는 자들은 몇 없다. 본래 언론의 진정한 역할은 상황을 꿰뚫어보고 비판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권력으로부터 대중들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권의 잘못을 덮으려는 기사를 보면 혀를 차곤 했다. 언젠가 바뀔 권력에 언론이 휘둘리는 것만큼 웃긴 사실도 없는 듯했다. 그래서 권력의 과오를 비판하는 기자들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숙대신보 취재부는 주로 학교 행사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지만 학우들의 불만을 듣고 학교의 제도 및 시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 관계에 기초해야 하고,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 취재부는 학우들의 불편사항을 부처에 전달하고, 부처의 입장을 듣는다. 그럴 때면 학교 부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부처 직원들이 아닌 학교의 잘못인 경우도 있다. 이런 점을 일일이 따져 기사를 쓰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억울하지 않을 기사를 쓰기 위해서 취재 과정부터 기사 작성까지 표현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혹은 기사가 나간 후 항의를 받을 때 ‘이럴 바에 안 쓰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편하게 학교 행사만 전달하면 취재원의 협조도 잘 될뿐더러 기자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일간지 기자가 떠올랐다. 학보사 기자는 전화로 혹은 메일로 받는 항의에 그치지만 일간지 기자들은 기사 때문에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때면 취재원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며 일하고 싶은 욕망이 생길 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당연시 했던 언론의 역할이 당연하지만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우리 현실은 기사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패기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려는 기자의 노고에 감탄하며, 다시 한 번 안일해진 나를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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