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평균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책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관심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을 때나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듣고 싶을 때 책을 읽는다. 책 속에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담겨 있다. 2012년의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는 지금, 마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는 기분으로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살펴봤다. 이번 한 해 동안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1월의 베스트셀러 :  <닥치고 정치> (김어준)

2월의 베스트셀러 : <해를 품은 달> (정은궐)

5,6,7월의 베스트셀러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

8월의 베스트셀러 :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

9,10월의 베스트셀러 :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김난도)

*순위 참조 :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外

 

 

 

 

*정치에 대한 관심

2012년 1월에도 김어준의 저서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에 대한 관심은 지속됐다. 이 책은 보수와 진보를 인간의 본능적 습성으로부터 구분 짓기 시작해 현 정권, 삼성, BBK 등 구체적인 주체와 사건을 통해서 우리나라 보수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 진보 정당의 한계 또한 확실하게 꼬집는다. 저자는 이런 밑그림을 충분히 보여준 다음 왜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누가 해야 하는지 현실 가능성에 근거한 전망을 제시하며 각자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해준다.

2011년에 이슈가 됐던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 시사인 주진우 기자,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민감한 정치 현안을 놓고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사 풍자토크프로그램이다. 나꼼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기존의 정치에 대한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치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 애청자가 있는 반면 정치를 지나치게 희화화하고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편향됐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다양한 계층의 관심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나꼼수 현상은 의의를 가진다.

이제 더 이상 정치와 관련된 도서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7월 19일에 출판된 안철수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대표되는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이전에 안철수가 썼던 <안철수 공부법>이나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과 구별되는 정치적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공식적인 대선출마선언은 9월 19일에 했지만, 그 이전부터 국민들은 안철수 그가 가진 생각에 관심이 많았음을 이 책의 인기가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대선후보인 문재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은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2011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선정도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문재인의 시각에서 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을 담은 이 책은 대선 시기와 맞물려 계속된 관심을 얻고 있다. 2011년 6월에 출판됐는데 지금도 여전히 주간베스트 순위권 30위 이내에 포함돼 있다.

 

 

 

*드라마, 영화와 함께 인기를 끄는 책

2012년 상반기에 방송된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42.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드라마 인기와 더불어 정은궐의 원작 소설 <해를 품은 달> 역시 인기를 끌었다. <해를 품은 달>은 조선 시대 가상의 왕과 액받이 무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역사 로맨스물로 정은궐 작가만의 매력적인 캐릭터, 흡인력 있는 스토리, 탄탄한 고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정은궐 작가는 2010년에 화제가 됐던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의 원작 소설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작가이기도 하다. <성균관스캔들>과 <해를 품은 달> 이 두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고 호평을 자아내면서 원작 소설 역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번 해 2월 <해를 품은 달>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2010년 당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역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대만에 번역 출판되며 범아시아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로 다뤄진 소설 원작에 대한 관심도 높다. 4월에 영화 <은교>가 개봉하고 나서 책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져 소설 <은교>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는 은교라는 소녀의 젊음과 관능에 매혹 당한 시인 이적요와 스승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한 패기 넘치는 제자 서지우, 위대한 시인의 세계를 동경한 열입곱 소녀 은교 세 인물의 질투와 매혹으로 뒤얽힌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존재론적인 물음을 던진다. 욕망과 죽음, 시와 소설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해를 품은 달>과 <은교>를 포함해서 ‘스크린셀러’의 인기가 뜨겁다. 스크린셀러는 영화를 뜻하는 스크린과 베스트셀러를 합친 신조어로 이미 출간된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재조명돼 관심을 끌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영화관입장권통합전상망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월부터 10월까지 국내에 개봉한 영화 385편 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12편이다. 이 중 원작 소설의 출간 이후 누적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도서는 은교, 화차, 밀레니엄, 헝거게임 순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경우 사전 기대감 및 흥행의 효과가 스크린셀러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상으로 본 작품을 소설로 보면 장면 연상이 쉽고 몰입도가 높기 때문에 스크린셀러의 인기가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아픔을 위로하는 힘

<리딩으로 리드하라>나 <자기혁명> 등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었던 2011년에 비해 올해는 소위 ‘힐링도서’로 일컬어지는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힐링도서는 매일매일 바쁜 일상, 항상 시간에 쫓겨 사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깨달음과 위로를 담아 사람들이 여유를 되찾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을 의미한다. 특히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올해 1월에 출간된 이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에 치이고 피곤에 지친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책을 통해 여유를 되찾고자 한다. 책뿐만 아니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과 힐링푸드, 힐링투어, 힐링하우스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비슷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현대인들이 가진 마음의 병이 그만큼 크고, 깊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괜찮다’ ‘힘내라’와 같은 위로와 응원을 포함한 제목을 가진 다양한 도서들이 연령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도서를 찾는 독자들은 책을 통해 누군가 자신이 가진 아픔을 공감하며 인정해주는 이가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도서들 중 특히 20대 청춘들을 독자로 삼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현재까지 200만부가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김 교수의 신작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역시 9월과 10월, 2012년 하반기의 주요 도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화 <화차>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얼마 전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기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치졸하다. 쓰레기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해서 논란이 됐다. 물론 기사에 담지 않을 것을 전제한 사견이었고, 지나친 표현이 맥락 없이 공개됐다며 김난도 교수에게 사과를 하면서 마무리는 됐지만, 많은 이들이 ‘청춘’의 열풍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청년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럴수록 더 힘을 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거시적인, 구조적인 변혁과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노력은 수레의 두 바퀴 같다고 생각한다.”라며 입장을 표했다.

이외에도 스님들의 힐링도서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뿐만 아니라 정목스님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와 법륜스님의 청춘멘토링 도서 <방황해도 괜찮아>, 행복한 결혼을 위한 조언을 담은 <스님의 주례사>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책뿐만 아니라 혜민 스님과 법륜 스님이 SNS를 통해 남긴 글은 이것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혜민스님의 페이스북 글에는 대개 1만에서 4만 명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트위터 팔로워 역시 28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남기는 글의 내용은 불교에만 국한되는 종교적인 내용보다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행복을 위해 지녀야 할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나 대인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식 등을 조언하거나 부모로서, 취업준비생으로서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으며 친근한 이미지로 호감을 얻고 있다. 이 또한 불안과 혼란을 지닌 사람들의 심리가 투영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을 통해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다가오는 2013년에는 어떤 책이 사랑을 받을까. 내년 이맘때 돌아볼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더욱 밝고 따뜻한 내용을 담은 책과 개인과 사회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꼽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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