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 기자의 역사 돋보기

  고조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 역사 속에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등을 거쳐 약 200여명의 왕이 등
장한다. 이 많은 왕들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왕이 세 명 있다면 바로 선덕, 진덕, 진선 여왕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신라의 왕으로 여자의 몸으로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렸다. 남성을 우선시하며 여자가 정
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과거에 이들이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너나할 것 없이 왕권을 더욱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고대의
국가였던 삼국은 성립 단계에서 연맹체적 정치단계(고구려 5부, 백제 5부,신라 6부)를 거치게 됐는데 이 때 생겨난 귀족들이 귀족 회의(고구려 제가회의, 신라 화백제도)를 구성해 왕권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신라의 귀족들도 귀족회의였던 화백회의를 지속하면서 왕의 전제를 막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권 강화의 틀이 됐던 왕위 세습은 꼭 유지해야만 했던 왕족의 과제였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아버지였던 진평왕은 슬하에 아들이 없었다. 때문에 진평왕은 남자에게만 왕위를 계승
해왔던 전통 속에서 자신의 딸에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진평왕은 진흥왕의 아
들인 동륜 태자의 직계후손들인 진평왕과 그의 형제들이 다른 진골보다 더 신성한 족속이라며 성골이라
는 특수한 신분층을 만들어 냈다. 이를 ‘성골이데올로기’라 하는데 이로 인해 성골의 유일한 후손이었던 진평왕의 딸 선덕 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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