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루]

 

▲ 김지현(화학전공 석사4학기)

  인생에는 3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직업의 선택이요,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 마지막은 인생관의 선택이다. 그러나 갓 20살이 되면서 위의 세가지 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선택을 우리는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전공이다. 나의 전공은 화학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전공을 매우 좋아한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자신의 전공을 좋아하고,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주기율표를 배우면서 화학의 매력에 빠졌다. 베릴륨(Beryllium, Be), 플루오르(Fluorine, F), 스트론튬(Strontium, Sr) 등 원소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긴 원소 이름을 알파벳 한, 두 개로 표시할 수 있다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국사 시간에 왕이나 장수, 혁명가니 하는 그런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 이름 외우는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또 화학은 규칙이 분명한 학문이다. 때문에 공부를 할 때, 많은 것을 암기할 필요가 없다. 규칙을 알면 문제마다 적용시키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무작정 외우는 것을 가장 못하는 나에게는 화학은 그야말로 가장 재미있는 과목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화학과에 왔다. 많은 수식과 기호, 규칙과 계산이 대학 4년을 가득 채웠고, 남들은 어렵고 힘들었겠다고 걱정할지 모르겠으나 난 즐거웠다.

  화학과에서만 통하는 농담으로, 유기화학을 배우면 정육각형을 예쁘고 빠르게 그리는 법을 익힐 수 있고, 물리화학을 배우면 각종 그리스어 기호를 읽고 쓸 수 있다고 한다. 화학과 학생이면 누구나 웃을 것이고, 그리고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여전히 화학이 좋다는 생각 하나로 대학원에 왔다. 길고 길것만 같던 석사생활도 끝나가면서, 화학과 학생으로서 졸업하면서 얻은 자신감은 다 잃고 내가 아는 게 참 없구나 라는 반성만 는다. 박사가 되면 남들도 나만큼 내 전공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데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싶다.

  마지막 한 학기만을 남기고, 그 학기의 개강일이 코앞에 다가오니, 이제 졸업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 현실적인 고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생각해보면 학부시절에도 이러한 고민이 나를 항상 따라다녔던 것 같다. 취업에 대한 걱정, 학점, 영어점수, 스펙 등등. 그때 그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화학공부나 열심히 하자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고, 나는 아마도 또 똑같은 결정을 내지 않을까 싶다. 지난날의 그 결정이 결국 나에게 높은 영어점수도, 휘황찬란한 ‘스펙’도 가져다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과거와 현재 모두 후회 없으니 말이다. 우리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대로 앞으로 가다 보면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되어있고, 나는 그저 열리는 문이 있으면 열고 들어가면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또 고민에 대한 아무런 현실적인 결론 없이 앞으로 나갈 것이다. 조금은 생각 없고 비현실적이며 단순한 이 결정은 요즘 같은 빡빡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행동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니까’ 그냥 하는 거다.

  김지현 (화학전공 석사4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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