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1일. 타지를 떠돌던 외규장각이 145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비록 대여형식으로 돌아온 것이었지만, 뉴스에서는 일제히 ‘조선 왕조 기록 문화의 꽃이 돌아왔다’며 보도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의궤가 공개된 11일에는 귀환을 기념하는 대국민 환영행사가 강화도와 경복궁, 두 곳 모두에서 성대히 치러졌다. 이후 각종 문화센터와 학교에서는 외규장각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배우는 특강이 연이어 개설됐다.

  대한민국의 6월을 이처럼 환희로 가득 차게 했던 우리 유산의 귀환. 그러나 100여년을 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던 우리 것이 이렇게 돌아오기까지는 한 사람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바로 고(故) 박병선 박사다. 그녀는 1955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 이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며 197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한다.

  “책을 발견하고 펼쳤을 때 먹 향이 코로 가득 들어왔다.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의궤를 발견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녀의 의궤 발견 이후 반환운동이 진행됐고, 이후 의궤는 한국 땅으로 돌아올 수 있다.

  11월 23일. 그런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83세의 나이였다. 임종을 앞둔 순간에도 그녀는 프랑스 사료 중 병인양요 자료를 모아 책 편찬에 힘썼다. 그녀가 파리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일생을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지켜내는 데 바쳤던 그녀를 추모했다. 그녀의 업적을 기려 정부에서는 그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같은 그의 일생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녀 한 사람이 보여준 우리 문화제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은 그런 마음이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당위적인 마음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우리의 유산과 문화를 ‘우리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기 위해선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그녀의 지난 83년 삶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그것이고, 이젠 우리 모두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의무는 아직도 남아있다. 의궤들이 다시 프랑스로 가지 않고 영원히 한국 땅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대여가 아닌 진정한 귀환이 될 수 있도록, 손에 손을 잡고 다 함께 노력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 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어렵게 돌아온 우리 문화제에 대한 책임을 갖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외규장각이 돌아왔던 6월의 그 뭉클함과 감격스러움을 가슴에 새기고, 그녀의 부탁을 잊지 않고 실천해야 한다.

  5년 후인 2016년이 되면 외규장각에 대한 대여가 또다시 이뤄질 것이다. 매 5년마다 우리 유산을 타국으로부터 빌려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풀이되기 전에, 전 국민의 노력으로 대여형식이 아닌 진정한 반환 형태로 우리 유산이 되돌아오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