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라이벌]

 

▲ (위) 왼쪽부터 강풀의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 윤태호의 웹툰 <이끼>. (아래) 각각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속 한 장면.

강풀 VS 윤태호

작년 여름 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이끼>와 올해 초 15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흥행한 영화라는 타이틀 외에 두 영화가 가지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원작이 웹툰이라는 점입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두 영화의 원작을 탄생 시킨 웹툰 작가 강풀(본명 강도영)과 윤태호입니다.

비슷한 연배의 두 작가는 ‘서사 웹툰의 쌍두마차’로 불리며 각자의 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8,90년대 만화계에 는 이현세와 허영만이 있었다면, 요즘은 강풀과 윤태호가 있다는 말도 있죠. 이처럼 둘은 인터넷 속에서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두 작가는 만화를 시작하게 된 배경부터 차이를 보입니다. 강풀은 아버지가 목사인 집안에서 공부 밖에 모르는 ‘범생이’로 자랐습니다. 학창시절엔 만화를 그리기는 커녕 읽지도 않았죠. 서른이 돼서야 만화를 시작했다는 그는 2년간의 백수생활에도 묵묵히 기다려주는 부모님 덕분에 자유롭게 만화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만화를 받아주는 곳이 없자 결국 직접 인터넷을 통해 데뷔를 했죠.

이와 달리 윤태호는 학창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꾸며 미대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는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만화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어렵사리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죠. 문하생 신분으로 수많은 연습을 한 끝에 윤태호는 25살의 나이에 만화 잡지 <월간 점프>를 통해 만화로 먼저 데뷔합니다. 때문에 데뷔 시기는 윤태호가 1993년, 강풀이 2002년으로 윤태호가 빨랐죠.

하지만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웹툰의 장점 때문일까요. 대중의 인기를 먼저 얻게 된 것은 강풀입니다. 강풀은 2000년대 초반 유행하던 엽기코드를 녹여낸 웹툰 <일쌍다반사>로 대중에게 어필합니다. 그 후에 <아파트>를 시작으로 <바보>, <순정만화>가 영화화 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올해 초반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흥행과 최근 개봉한 <통증>의 원안 작업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웹툰 작가로 거듭나게 되죠.

반면, 윤태호는 종이 만화로 데뷔해 지속적으로 매니아 층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아왔지만 대중적이진 못했죠. 2008년에는 <이끼>를 웹에 연재하면서 웹툰계에 입문을 성공적으로 마칩니다. 그러다 결국 그는 작년 영화 <이끼>의 흥행과 함께 데뷔 17년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됩니다.

데뷔 과정이 달라서인지 두 작가는 그림체도 극명히 다릅니다. 강풀은 대학생 시절 학생회활동을 하며 대자보 삽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글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그림이다보니 아기자기하고 간결한 느낌이 많이 났죠. 때문에 지금도 강풀의 그림체는 그 시절의 느낌이 남아있습니다. 반면 문하생 출신으로서 만화가의 정통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는 윤태호는 전형적인 출판 만화의 그림체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체는 강풀에 비해 훨씬 섬세하고 사실적이죠.

하지만 이처럼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작가는 모두 빼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많은 작가들이 연재하기 편한 에피소드 형식의 만화를 많이 그리지만, 두 작가는 잘 짜인 구성을 바탕으로 한 장편을 주로 연재합니다. 실제로 총 80화로 구성된 웹툰 <이끼>는 원작의 줄거리가 탄탄해 변형을 거의 거치지 않고 2시간 40분짜리 영화로 제작 됐죠. 이러한 능력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탄생한 것입니다. 강풀은 중학생 때부터 동네 도서관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고 윤태호 또한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여러 차례 습작을 했다고 하죠.

훌륭한 스토리텔링 능력 외에도 두 작가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 또한 비슷합니다. 7,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두 작가는 그들이 느낀 사회의 부조리를 만화로 표현합니다. 강풀은 최근 화두가 된 ‘반값 등록금’과 관련된 웹툰을 그리기도 했고, 윤태호 또한 그의 만화<야후>에서 ‘삼풍백화점 붕괴’를 모티브로 삼아 메시지를 담아냈죠.

이처럼 강풀과 윤태호는 각자 자신만의 색깔로 메시지를 전하며 서사만화의 라이벌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하지만 연재 이후 20kg가 찌고, 연습한 종이가 라면 박스 수십 개를 채운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데뷔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다음 화를 기다리는 팬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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