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라이벌]

이황 VS 기대승

우리가 지갑 속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바로 천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 선생이죠. 우리에게 익숙하게만 느껴지는 이 분은 사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성리학의 대가입니다. 그는 ‘동방의 주자’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로 성리학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무려 26살이나 어린 학문적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훗날 율곡 이이 선생에게도 영향을 미친 고봉 기대승 선생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황 선생과 기대승 선생은 자그마치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토론을 했습니다. 세대를 초월해 성리학에 대해 논했던 두 학자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성리학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 봅시다. 성리학이란 우주와 인간의 존재에 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에서는 우주와 인간의 존재가 이(理)와 기(氣)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죠. 이해를 돕기 위해 ‘붕어빵’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보통 ‘붕어빵’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공통된 모양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사물의 이상적인 모습을 성리학에서는 ‘이’라고 합니다. 한편 실제 붕어빵 기계로 찍어낸 붕어빵은 조금씩 반죽의 양에 따라 모양이 다르죠. 안에 들어있는 팥의 양도 미세하지만 다르고요. 이렇듯 사물의 실제 모습을 성리학에서는 ‘기’라고 합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이와 기가 사람의 마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에 대해 2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우선 주자는 이가 사람의 마음에서 작용한 것을 4단, 기가 작용한 것을 7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주자는 인간의 이상적 속성을 착한 마음인 4단으로 보았고,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현실적 속성을 7정으로 보았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의 편지에서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이와 기에 대한 두 학자의 입장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황은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받아들여 ‘이’와 ‘기’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대승 선생은 ‘이’와 ‘기’가 관념적으로는 구분될 수 있으나 사물 자체에서는 나눌 수 없는 의존관계에 있다고 보고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했죠.

한편 인간의 본성인 4단과 7정에 대해서도 두 학자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황은 인간의 본성이 오직 착하기만 한 본성인 4단이라고 보고 성선설을 내세웠습니다. 또한 4단과 7정을 서로 분리할 수 있다고 봤죠. 반면 기대승은 인간의 본성이란 선과 악이 섞여있는 7정이며 7정 안에 인간의 착한 본성인 4단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은 그 이후 조선의 성리학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황은 사림을 양성하는 서원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훗날 서원은 당쟁의 근원이 되는 곳으로 변질되기도 하지만 성리학의 발전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기대승은 율곡 이이의 사상에 영향을 미쳐 성리학의 다양한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그의 사상은 훗날 이이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에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 사단과 칠정에 관한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화두가 되기도 했죠.

이황과 기대승은 열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사실 라이벌이라기보다는 학문적 동지에 가까웠습니다. 이황은 기대승과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대승의 주장을 수용해 자신의 주장을 수정할 정도로 기대승을 존중해주었습니다. 한편 기대승은 이황을 자신의 스승으로 여겼으며 이황과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의 모습에서 나이 어린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처럼 나이에 귀속되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풍토가 대학 내에도 갖춰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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