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예술가② - 1인 밴드 '죄다 커플'

▲ 새벽 1시, 홍대 앞 거리에서 만난  '죄다커플'은 계속되는 공연에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밤 11시의 홍대 앞 거리에서 기타를 둘러맨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불꺼진 비누 가게 앞에 홀로 앉아있었다. 그는 바로 자칭 ‘홍대 남신’이라 부르는 1인 가수 ‘죄다커플’(강명훈26)이다. 2009년 겨울, 처음 보는 사람들과 노래 한 곡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 그는 밴드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작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홍대 앞 거리에서 공연을 해오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처의 한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그는 그 날도 어김없이 일을 마친 뒤 같은 자리에 나타났다.

  공연시작 전 그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인용 간이 의자와 음향기구, 종이로 만든 홍보판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젊은이들은 끼리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대화를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한창 노래를 하던 그의 옆에 한 청년이 앉았다. 청년은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됐다며 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대한민국 솔로를 위한 노래가 있다며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홍대에도 죄다커플, 어딜가든 죄다커플!” 이내 청년은 웃음을 터트렸고 나중에는 리듬을 타며 함께 따라 불렀다. 또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연락처를 묻다 거절당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헌팅실패, 헌팅실패~”라며 노래 가사를 바꿔 놀리기도 했다. 그의 재치 있는 노래에 거절을 당한 남자와 거절한 여자 모두가 멋쩍게 웃었다.

  이처럼 그의 공연은 이렇다 할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지 않다. 청중이 원하면 ‘10cm’가 되기도 하고 영어를 못하는 ‘제이슨 므라즈’가 되기도 한다. 지나가던 아는 동생이 옆에 앉아 즉석에서 합주를 하기도 한다. 공연이 진행되는 3시간 동안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그의 레퍼토리가 되는 것이다.

  가끔은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번화가인 홍대가 무대인만큼 그의 청중은 대부분이 술에 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누구 노래가 듣고 싶으니 불러 봐라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굴기도 해요. 호응을 해주기는 커녕 노래 못 부른다며 외면해버리는 사람도 많고요.”

  밤이 깊어지자 그의 거리 공연장은 클럽에서 빠져나온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줄이 하나 끊어진 통기타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한껏 클럽의상을 차려입은 젊은이들과 부조화를 이루는 듯 했다. 그는 이렇게 몇 년 사이 클럽 문화로 얼룩져버린 홍대의 모습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사실 홍대를 떠나려고 했어요. 요새 일렉트로닉 클럽에 밀려 락 공연장은 문을 닫는 추세거든요. 2~3년 전까지만 해도 밴드 아티스트가 많았는데 점점 설 곳을 잃어가니까 홍대는 이제 끝났다는 말도 나와요. 하지만 홍대는 오랜 시간 인디문화가 정착된 곳이기 때문에 지키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평일 저녁이면 매일마다 홍대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끈기 때문일까.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은 그를 보면 “또 뵙네요” “아직도 공연하세요?”라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청중들의 박수와 함께 그의 공연이 끝났다. 잠시 후면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데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괜찮다며 웃어 보인다. “9월에 음원을 내려고 계획 중이거든요. 돈을 모으려면 어쩔 수 없죠.”

  공연 경력 일 년 반을 조금 넘긴 그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많다. “9월 17일에 열리는 ‘Born to rock’이라는 공연에 신인 아티스트로 신청 할 거고, 제 음원을 내면 내년 여름에는 기타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 해수욕장을 다니면서 공연도 해보고 싶어요. 음악 경쟁프로그램도 나가보려 해요.”

  만약 당신이 홍대에 갔을 때 거리에 온통 ‘죄다 커플’이라 슬픈 솔로라면 1인 밴드 ‘죄다 커플’을 찾아가보자. 그의 옆에 앉아 말을 섞고 “홍대에도 죄다커플”을 흥얼거리는 동안 당신의 허전함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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