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과 소서노. 이들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는 별개로 작년 ‘이순신’에 이어 줄줄이 제작된 많은 사극드라마들로 보건데,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과도기 민족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단일민족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례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TV속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는 ‘민족’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이런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가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방송국과 영화제작자들은 더 많은 역사물을 기획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 속 인물을 끌어내어 재미와 영상미를 더해 작품으로 접할 수 있다면 이는 역사를 가까이 하는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가 변질돼 지나친 영웅(남성)주의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초점이 맞춰질 경우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러한 역사물이 왜 계획되고 방영됐는가를 생각해 보자. 중국의 동북공정에 발맞춰 역사를 왜곡하는 드라마들이 중국 내에서 방영되자 대한민국도 이제 맞서 역사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더해져 많은 역사드라마가 제작됐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드라마 <황진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드라마가 이순신, 연개소문, 주몽 등 남성 영웅을 주로 다뤘다는 사실이다.

 

극 중에서 이들은 영토를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적군을 죽이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기본적인 이야기 전개가 이러한데, 이것은 결국 남성으로 상징되는 영토확장, 민족국가의 건설, 그리고 폭력을 내포하는 페니스 파시즘을 바탕으로 한다. 페니스 파시즘이 바탕이 된 역사물은 자칫 무력적인 영토확장을 정당화하거나 남성중심의 민족국가 설계를 정당화 할 위험이 있는데, 이는 곧 남성중심의 국가권력, 배타적 민족중심주의로 이어진다.

 

이미 국내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고, 작년 한해 총 결혼의 10%가 국제결혼일 정도로 대한민국 사회는 점차로 다인종 ․ 다문화사회를 향해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기존 ‘민족’의 개념 변화에 소극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우리’ 역사를 남성 영웅들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강조하고, 외세의 압력에 맞서 단합하는 ‘단일민족’을 하나의 바람직하고 유일한 모델 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더욱 배타적인 역사관과 민족관을 형성할 우려가 있다.

 

즉, 중국에 맞선 민족적인 움직임이라는 명분 아래 대한민국으로 이주해 온 ‘그들’을 ‘우리’ 사회에 끌어들이기는커녕 이들이 극 중의 적군인 이민족이라도 되는 것 마냥 오히려 철저히 배척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득 동북공정을 위한 역사와 민족주의가 다인종 · 다문화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민족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이순신과 주몽에 열광했듯 우리는 앞으로 등장할 또 다른 영웅도 분명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반복될 전투와 영토확장으로 이어지는 남성주의 페니스 파시즘의 이야기 전개는 사절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단순히 무력과 지배로 이뤄지지 않았고, 민족은 그렇게 쉽게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역사’라는 단어를 굳이 ‘영웅’이 등장하는 기록으로만 한정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비판해 온 서구열강의 침략적인 역사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가 익히 아는 영웅이 아니라 주류 역사에서 소외됐던 약자 혹은 이방인, 더 나아가 파키스탄에서 온 여성이 등장하는 ‘역사드라마’도 가능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숙명여대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1힉기 홍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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