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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지금 발생했다면 범인 잡았을텐데”
윤한슬 기자  |  smpyhs79@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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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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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정희선(약학 78졸) 동문 인터뷰

“앞으로는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난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거든” 지난 10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싸인’에서 윤지훈 법의관(박신양 분)이 남긴 명대사다. 윤지훈 법의관과 고다경 법의관(김아중 분) 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연구원들은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억울한 죽음의 비밀을 파헤쳤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런 연구원들의 모습에 드라마 속 국과수뿐만 아니라 실제 국과수에도 매료됐고, 이는 ‘국과수붐’으로 이어졌다. “요즘 국과수에 입사하고 싶다는 고등학생들의 편지가 그렇게 많이 올
수가 없어요. 덕분에 직원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니까요.” 국과수에서 만난 국과수 최초 여성 원장인 정희선(약대 78졸) 동문의 입가엔 미소가 띠었다. 정 동문은 원장실로 찾아간 후배들을 반갑게 맞아주며 원장실을 소개했다. 그 중 정 동문의 책상 뒤편에 ‘과학은 진실을 밝히는 힘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대학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며칠 전, 대학생 때 쓰던 학생수첩을 봤어요. 그 수첩에 그날 공부할 과목, 그 외 활동 등이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요. 수첩을 보니 그 때 당시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대학 시절에 저는 참 많은 활동을 했었어요. 저는 대학생 때 RCY 동아리에서 회장도 하고, 총학생회도 했어요. 당시에는 총학생회가 학도호국단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저는총학생회의 부회장 격인 부사단장을 맡았어요. 주로 축제와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학우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일을 했죠.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제가 리더십을 기를 수 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진 않았어요. 항상복습도 철저히 하고, 시험 기간에는 더욱 열심히 했죠. 그 중에서도 특히 영어 공부에 가장 큰 비중을 뒀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영어 공부를 하는사람이 적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더욱 경쟁력이 있었어요. 그 덕분에 지금은 제가 ‘국제법 독성학회’에서 사무
총장을, ‘영국 외무성 장학생 동문회’에서는 회장을 맡고 있답니다.


-국가 기관이나 과학 분야에서의 여성 리더는 특히나 드문 것 같아요. 그런데 국과수는 국가 기관에다 분야도과학이에요. 어떻게 최초 여성 원장이될 수 있었나요?
알다시피 리더가 되기 위해선 ‘인적네트워킹’이 필수적이에요. 하지만 저는 여대를 나왔기 때문에 인맥이 폭넓게 형성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점을 보완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죠. 서울대에서 고위 정책 과정을 수료하면서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애썼어요. 뿐만 아니라 저는 한 번 알게 된 사람들과 편지나 이메일 등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연락해요. 편지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지난 달 뉴질랜드에
서 발생한 지진 현장에 국과수 전문가들을 파견한 일이 떠오르네요. 제가 우연히 뉴질랜드에서 국과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 있는제 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편지를 썼거든요. 그 후 제 지인을 통해 바로 뉴질랜드 정부에서 연락이 와서 도와줄 수 있었어요. 이 외에도 인적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어서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은 경우가 많아요. 제게는 인연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요. 이런 저의 모습이 원장이 되는데강점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다른 기업이나 기관과 마찬가지로 국과수에서도 여자가 남자에 비해 승진이 느려요.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욱 느렸죠. 그러니 제가 여성으로서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승진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업무가 힘들 뿐더러 승진도 느려서그만두는 몇몇 여성 연구원들이 있었는데 저는 제 일에 대한 애착으로 묵묵히
일하면서 고비를 잘 넘겼어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제가 국과수 원장이 돼있더라고요. 현재 국과수에서 일하는 여성 연구원들과 앞으로 들어올 연구원들에게 ‘3년만 버티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3년차가 가장 큰 고비거든요.

-요즘 드라마 ‘싸인’ 덕분에 국과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그 중에서 증거를 조작하거나 빼돌리는 장면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가 됐는데, 실제로 발생할 수도 있나요?
당연히 실제 국과수와는 전혀 다른이야기죠. 저는 그 장면을 그저 웃으면서 넘겼는데, 보는 이들은 심각하게 생각하나 봐요. 제 지인들도 그 장면에대해 저한테 많은 질문을 하더라고요.‘정말로 저런 일이 가능하냐’는 식의질문이요. 하지만 이는 국과수의 체계상 불가능한 일이에요. 드라마에서 원장이 증거를 조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연구원들이 특정한 사건에 대해 감정을 하면 저는 그 사실을 수용할 뿐이지 그에 대해 어떠한 권력도 행사하지 않아요. ‘과학으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인데 왜 조작을 하겠어요. 또한
무엇보다도 국과수에서는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에 증거를 빼돌릴 수 없어요. 이 외에도 ‘싸인’에서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나오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죠. 저도 이 드라마를 봤는데, 극적인 요소를 위해 연출된 장면이 많더라고요. 허구적인 요소가 많았지만 재밌게봤어요.


-‘싸인’이 방영된 이후 국과수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인기와 함께 국과수에 대해 오해하는 시각도 많을 것 같은데 국과수는 권력과 관련 없는 기관이에요. 우리는 단지 사실 그대로만을 보고, 과학만을 추구하거든요. 물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국과수에 대해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드라마는 드라
마일 뿐이에요. 국과수가 오해를 사는 것이 걱정됐다면 처음부터 그 드라마의 촬영을 수락하지도 않았겠죠. 저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싸인’ 덕분에 국과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으니까요.

-드라마 등장인물 중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었나요?
권력 앞에 한없이 무너지는 드라마 속 이명한 원장(전광렬 분)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은 분노를 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드라마 속 원장을 보고 굉장히 감동 받았어요. 그가 비록 권력에 눈이 멀어 증거를 조작하기도 했지만 그는 저만큼이나 국과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거든요. 다만 국과수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는 수단과 방식이 잘못됐을 뿐이죠.
-국과수의 명칭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바뀌었어요
단순히 명칭을 바꾼 것이 아니라 승격시켰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아요. 연구소와 연구원은 지위 자체가 다르거든요. 연구소 위에 연구원이 있는 거죠. 무엇보다도 연구원은 정책기관이기 때문에 연구소보다 더 많은 전문적인 연구를 할 수 있고, 정부의 지원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연구소였을 때보다 계획한 일을 더 순조롭게 할 수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과수가 한 계급 올라간 것이기 때문에 원
장인 저도 공무원 계급이 높아졌고, 모든 직원들의 지위가 향상됐다는 거에요. 국과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셈이죠.
-또 개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드라마 속에서는 부검의들이 직접 현장 조사를 하기도 하는데, 아직 국과수에서는 연구원들이 직접 현장 조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국과수 내에서 현장 조사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증거물을 가져오면 나머지 연구원들은 이를 분석하기만 하죠. 하지만 분석가나 부검의가 현장 조사에 참여한다면 사건발생 당시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기때문에 사건을 해결하기가 더 용이해져요.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지만 아직은
절차상 분업이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싸인’이나 ‘CSI’처럼 분석가들도 현장에서 조사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과수의 청사진을 그려본다면?
국과수는 국민이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관이에요.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력이죠. 사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최근에 발생했더라면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 거에요. 일명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도 마찬가지에요. 그 당시에는 국과수의 기술력이 미약했는데 지금은 많이 발전했거든요. 과거 미해결 사건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요. 대신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든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통해 더 많은 과학적 지식을 쌓을 거에요. 다른 나라에서 자문을 구할 만큼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한 유전자 검출 기술처럼 말이에요.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때에도 그의 옷에서 10억분의 1g에 불과한 혈흔으로 유전자를 찾아낸 사실은 국과수의 유전자 검출 분야의 기술력을 입증해줘요. 이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국과수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이자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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