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올라온 인디 문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디문화’는 곧 ‘언더그라운드 문화’였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마니아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얘기가 달라졌다.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2집 타이틀곡 ‘그렇고 그런 사이’로 앨범 판매량 2만 장을 훌쩍 넘기는가 하면, 가수 ‘10cm’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디계의 아이돌’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한편 인디밴드를 다룬 독립영화 ‘플레이’는 약 1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디’라는 말은 인디펜던스(Independence)의 약자로 ‘독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디문화는 ‘인디영화’와 ‘인디밴드’ 로 좁혀진다. 이들이 ‘인디’라고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들이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돼 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나 대중가요와는 달리 인디 밴드와 영화는 기업의 투자를 받지 않고 작품을 제작한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익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표현방법을 시도할 수 있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맨 처음 대중들에게 ‘인디’라는 장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언더그라운드 락 밴드에 의해서다. 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밴드 ‘크라잉넛’이 대표적이다. 데뷔 이전부터 홍대 앞 카페에서 공연을 해오던 그들은 펑크락 밴드 특유의 시원스러움으로 데뷔와 동시에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들의 대표곡 ‘말달리자’가 수록된 1집 앨범은 10만장이 팔려나가는 위력을 과시했다. 그 이후 2000년대에는 ‘노브레인’이 그 뒤를 이었다. 그들 또한 ‘넌 내게 반했어’와 같은 펑크락 장르의 음악으로 인기를 얻으며, 대중들의 마음 속에 ‘인디밴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와 달리 ‘인디영화’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익숙해진 것은 겨우 몇 해 전의 일이다. 그 시작은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워낭소리>에서 출발했다.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소와 인간의 우정으로 풀어내 대중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 결과 독립영화계에서는 유례없이 약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후 독립영화계는 <워낭소리> 전과 후로 나뉘게 된다. 우선 개봉작수에 큰 변화가 생겼다. < 워낭소리 > 가 등장하기 전인 2007 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의 수는 평균 6 편에 불과했다. 그러나 20 09년 이후 평균 30 개의 독립영화가 개봉했으며 2011 년 올해는 8월까지 총 27개의 독립영화가 개봉했다. 독립영화계가 활기를 띠면서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다양한 변화가 시도됐다. 2010년에 개
봉한 영화 <노르웨이의 숲>은 코믹과 호러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이 영화는 잔혹한 분위기 속에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를 넣어 ‘호러 코미디’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언뜻 보면 ‘인디’는 하루 아침에 반짝 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디밴드는 자신들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홍대 앞 라이브 카페를 전전했으며 1995년도에 개봉한 독립영화 < 낮은 목소리>나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제작비의 일부를 관객들의 모금을 통해 마련했다. 한 마디로 인디문화는 ‘가난한 예술’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이너’로 여겨졌던 두 문화는 관심을 받기까지 어떻게 성장했을까.

먼저 인디밴드는 1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인디밴드의 1세대라고 불리는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즈음에 인디밴드는 1세대의 명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홍대문화를 주름잡았던 라이브 클럽이 댄스 클럽에 자리를 내주면서 그들도 갈 곳을 잃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위 ‘돌아온 통기타 세대 ’ 로 대표되는 ‘장기하 와 얼굴들’과 ‘10cm’가 인기를 얻으면서 펑크락 중심의 인디밴드는 포크송 가수와 어쿠스틱 밴드에게 길을 내주었다. 나도원 음악 평론가는 이에 대해 “인디밴드가 16 년의 역사에서 상업음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다양한 시도들을 함으로써 이제는 대중음악에 견줄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 역시 꾸준히 그들의 길을 걸어왔다. <워낭소리>로 인해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부터 독립영화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6년에 시작된 ‘인디포럼’이다. ‘인디포럼’은 한국 최대의 독립영화 축제로, 지난 1년 동안 제작된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인디 포럼에서는 약 100 여개의 국내 독립영화를 소개하며 독립영화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들을 토론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2008년에 <워낭소리>의 3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요즘 이렇게 ‘인디’가 ‘뜨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건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열정을 가지고 ‘인디’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인디밴드 ‘몽구스’의 보컬 김준수(남, 30세)는 “인디밴드는 협동은 하지만 타협은 하지 않는 매력”이 있어 인디밴드 활동을 한다고 전했다. 또한 “대중가수가 되어 유명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명성은 언젠가는 흩어진다”며 “인디를 선택한 것은 음악과 자신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디가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는 어떻게 바라볼까. 나 평론가는 “비슷비슷한 대중문화에 지루함을 느낀 젊은이들이 신선함을 찾아 나선 결과”라고 평가했다. 기존의 대중문화가 고도로 상업화 되면서 그것이 문화의 전부인 양 기우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주류’가 아닌 ‘인디’에서 새로운 통로를 발견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누군가는 ‘인디’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10cm’가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독립 영화 전용 배급사의 등장으로 상업적인 성격을 띠게 돼 ‘독립’이라는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워낭소리>나 <똥파리> 같은 독립영화가 흥행 했을 때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두 영화는 작품성 때문에 인정을 받은 것일 뿐, 애초에 돈을 벌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다만 10cm와 같은 인디밴드들은 상업화 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대중들의 기호가 인디문화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상업문화 못지않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인디문화의 미래는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어떻게 발전할까. 나 평론가는 “앞으로 인디문화는 일시적은 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장으로 자리잡는 문화가 될 것”이라며 “거대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상업문화와 인디문화는 각각 공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독립영화에 대한 다소 낙관적인 전망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독립영화가 워낭소
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는 했지만 산업 환경은 개선되고 있지 않아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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