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문구가 있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공자님 말씀이다. 상큼 발랄해야 할 여대생이 웬 공자 왈 맹자 왈 타령이란 말인가. 그러나 지금껏 위태로운 청춘을 버텨낼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이 케케묵은 말 한 마디였다. 
  고등학생 시절 기자는 학교에서 소위 ‘작가가 되려는 애’로 통했다. 때문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입시학원으로 향하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문학 교실에 가거나 소설 속 풍경을 찾아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기자가 문학인으로서의 큰 뜻을 품은 것도 아니었으며 번뜩이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기자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은 온통 윤동주들이고 박완서들 이었으니 말이다. 혹자들은 재능이 있지도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은 일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나를 한심하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히 자신하건데 그 누구보다도 문학을 즐겼고, 순수하게 몰입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 번도 힘든 줄 모른 채 글공부를 즐겼고, 그렇게 쓴 글이 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실 이 ‘즐김’의 가치를 알기까지 기자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문득 장래에 대한 불신이 다가와 결국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 진로를 바꾼 것이다. 그 이후 혼자 출발점으로 되돌아갔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초조했다. 즐기기는커녕 그저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기대 이하였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아무 힘도 들이지 않던 예전보다도 성과가 없는 걸까’하는 자책감만 가득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끊임없이 고민하던 어느 날 공자의 그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고 즐길 때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것이다.
  그리고 1년 반 전, 대학교에 입학한 기자는 다시 즐길 거리를 찾기 위해 이곳 숙대신보의 기자가 됐다. 사실은 아직까지도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문화부 정기자로서 취재를 위해 공연장을 찾을 때면 화려한 기자를 꿈꾸다가도, 공연장에서 나오는 길에는 무대 위에서 내 작품을 연출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무엇을 선택해야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을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신념이 있기에 현재 이 불확실한 시간들이 두렵지만은 않다. 남보다 조금 뒤처지면 어떤가. 단 한 가지 일이라도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즐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청춘을 보낸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나에게 그 단 한 가지 일은 숙대신보 기자로서의 역할일 것이다. 이제 정기자가 아닌 편집장으로서 그리고 문화부장으로서 또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선 지금,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즐길 줄 아는 기자가 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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