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한지도 두 달여가 지났다. 진도 9.0의 지진과 최대 30미터를 넘는 쓰나미. 연이은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공포까지, 말 그대로 미증유의 대재해이자 대참사였다. 일본 동북부 지역은 초토화되었고, 후쿠시마현은 원전 인근 20㎞ 이내의 출입이 금지된 죽음의 땅으로 변모했다. 계속되는 여진과 방사능 공포에 일본 사회는 여전히 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지진 등 재해예방에 관한한 세계 최선진국임을 자타가 공인하던 ‘안전왕국’ 일본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동시에 이번 대참사는 일본이 현재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들을 전면에 현저히 부각시켰다. 노령화 문제, 지역개발 편중, 행정집행의 경직성. 사망자의 3분의 2는 60세 이상의 고령자이며, 피해지역인 동북지방은 일본 전체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민감한 안전문제 때문에 설치지역 선정에 의례 난항을 겪곤 하는 원자력발전소가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이 지역에 밀집된 것도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구호품을 재워놓고도 절차 문제로 이재민을 굶주림과 추위에 몸부림치게 하는 대목에서는 안쓰러움을 넘어 분노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가장 큰 충격은 역시 방사능관리의 허술함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폭 피폭 국가이다. 그렇기에 핵과 방사능은 지울 수 없는 일본의 트라우마이다. 유명한 괴수영화 ‘고질라’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본의 안위를 위협하는 침입자의 본질은 핵에 대한 일본인의 본원적 공포와 피해의식이다. 하지만 외부적 공격에 의한 과거의 상처와는 달리 이번 방사능 사태는 철저히 자초한 재난이다. 미군 함대에 굴복해 개국한 메이지유신을 비롯해 일본의 근대는 외부의 자극을 계기로 반응하고 결속한 역사의 연속이다.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위협을 되레 내부 결속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왔다. 방사능 사태의 치명적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일본에게 방사능과 핵은 절대 자기책임으로 위기가 야기되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었다. 그것은 자기부정을 통한 극복으로써 지속해 온  근대 그 자체가 송두리째 ‘자기부정’되는 존재의 위기에 일본이 직면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지진 이후 한국에서는 지진 및 방사능 안전대책 문제로 떠들썩하다. 일본의 위기를 ‘낯선’ 타국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새삼 결코 친숙치 않은 일본과 우리의 ‘가까움’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리라. 일본의 대참사에서 우리가 진정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재해예방 및 안전대책 마련보다 훨씬 더 긴요한 하나. 그것은 내파된 일본의 존재적 위기 국면을 타자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비록 매우 동의하기 어렵더라도, 우리와 일본의 근대가, 직면했던 제 문제의 본질과 그 해결법에서 실은 매우 유사한 도정을 밟아왔음을 직시할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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