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지난 몇 달 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줄곧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국내에서 출간된 도서 가운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될 전망이 높다. 처세서와 읽기 쉬운 소설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최근 출판시장에서 철학서에 가까운 인문학 도서가 이처럼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유입된 이 하버드대학 교수의 강의록에 대한 우리나라의 반응은 신드롬을 방불케 했다.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공교롭게도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이었다. 휴가지에서 읽은 책의 감명이 ‘공정’이라는 슬로건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정부의 정책이자 공영방송의 표어가 되다시피 한 ‘공정’한 사회는 정의로움이 모자란 권력이 샌델 교수의 책을 필요에 맞게 재단하여 위에서 아래로 하달한 결과이다.
이 ‘정의 신드롬’을 바라보는 다른 해석은 우리사회가 정의에 너무 목말라서 샌델 교수의 책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이 삼사십 대에 속하는 386 혹은 486세대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한때는 사회과학서를 탐독하던 대학생이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또한 충분치 않아 보인다. 샌델 교수의 책 어디를 뒤져보아도 정의에 목마른 자를 위한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저자는 정의를 바라보는 행복, 자유, 미덕의 세 방식에 대해 여러 철학자들을 인용하며 다각도로 논의할 뿐, 그리고 책의 결말에 가서 자신은 공동체주의자라는 입장을 슬쩍 비칠 뿐, 정의를 정의(定意)하려는 시도나 의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샌델 교수의 책은 정의의 결핍을 당장 채워줄 책으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명확한 정의를 원하는 독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것은 저자가 반복해서 보여주듯이, 정의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방식과 관점이 서로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의란? 저자의 견해는 크게 두 단계로 줄일 수 있다. 정의는 그 복잡성을 인지하면서 사회가 협심하여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입장의 차이를 피하지 말고 그것을 소통할 수 있는 토론과 논쟁의 장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권의 책에서 촉발된 화두가 하나의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생산적인 기폭제가 될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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