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영화 ‘라임 라이트’ 홍보차 영국에 방문했던 찰리 채플린은 다시는 미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산주의자로서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분노한 채플린은 미국 영주권을 포기했다. 알다시피, 당시는 이른바 *매카시즘(McCarthyism)의 광풍이 미국을 휩쓸던 시기였다. 정치인은 물론 예술가와 과학자들까지 줄줄이 의회에 불려나가 자신의 신념을 심판 받아야 했다. 

이 시점에 아서 밀러는 희곡 * [시련(The Crucible)]을 무대에 올린다. 작품의 배경은 1692년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이라는 작은 마을. 아직 식민지 시기였던 당시 미국 사회를 지배한 것은 청교도의 엄격한 도덕률이었다.

애비게일이라는 처녀와 불륜 관계였던 주인공 존 프록터는 그 관계를 청산하려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애비게일은 프록터에 집착한다. 오히려 그녀는 프록터에게서 아내 엘리자베스를 떼어놓기 위해 우연히 발생한 마녀재판에서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몰기 시작한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마을 전체가 마녀재판의 희생양이 될 상황에 이른다. 다행히 사건을 조사하러 온 종교 감독관도 그것이 그저 해프닝이라는 것을 눈치챘고, 우리 식으로 말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마녀행위를 인정하면 없었던 일로 처리하고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프록터도 거기에 응하기로 마음먹지만 마지막 순간 죄목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라는 요구에 멈칫한다. 그리고 그 요구를 거부하고 화형대에 오르는 것으로 무대는 막을 내린다. 

왜 프록터는 서명을 거부했을까? 자신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고작 서명쯤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존 프록터는 불륜이라는 명백한 흠결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동시에 프록터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애비게일과의 은밀한 간통죄를 앞장서서 고백할 정도로 정직했고,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마녀라고 거짓 고백할 정도로 책임감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나 권력은 가정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헌신을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근친자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을 미끼로 양심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프록터는 고민 끝에 양심을 택한다. “이것은 오직 하나뿐인 나의 이름입니다. 이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영혼은 팔았지만 이름만은 팔 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목사도, 재판관도 모두 틀렸을 때, 주인공은 추상적인 공동체의 일원이기를 포기하고 대신 구체적 자유 시민으로서 공동체의 비극에 책임을 졌다.

광풍이 지나면 숭고한 희생은 기억으로 재생돼 공동체의 도덕적 혁신을 이끌어낸다. 개인과 공동체의 화해는 이처럼 고요한 사색이 아닌 폭풍과도 같은 ‘시련’에 이어지는 엄청난 사회적 갈등의 분출을 전제한다. 미국인에게 저항하는 양심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으로 보존돼 있으며, 대개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언제나 깨어 있는 양심들의 공적인 호소에 다수가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이러한 관습이 있기에 국가로서 미국의 그 엄청난 오만은 바깥의 압력이 아닌 안쪽의 양심에 의해 규제된다. 다만 그러한 메카니즘(Mechanism)이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려면 인내심이 꽤나 필요하다. 찰리 채플린이 아카데미 공로상 트로피를 받기 위해 미국 땅을 다시 밟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매카시즘(McCarthyism) : 1940~50년대 냉전시기, 공산주의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던 미국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 국무성에 205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있다는 메카시의 발표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공산주의를 축출한 사건에서 유래됐다.
*[시련] : 아서 밀러의 희곡으로 [세일럼의 마녀들], [크루서블] 등의 제목으로도 번역됐음.


기고 : 의사소통센터 이황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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