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기독교단체 소속 학생들이 주도한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이 세간의 화제이다. 단체의 대표목사가 공식적인 사과의사를 밝혔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의 비판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기독교의 선교지상주의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구태여 타종교의 본거지에서 상대방이 지극히 혐오할만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주장을 설파하는 이러한 선교방식에 대한 기독교 내부의 의견이 사뭇 궁금해졌다.
왜 그들은 하필 절을 택해 행동하였을까. 그것은 그곳에 모셔진 불상이 기독교에서 금지하는 우상숭배의 전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우상(偶像)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 우상이란, 1차적으로는 하나님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형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상이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유형, 무형의 모든 장애물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타종교 혹은 타종교의 신상이 그 관계를 저해하는 가장 본질적인 장애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라고 답한 이는 다른 이도 아닌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다. 덧붙여 그는 자신의 진실한 믿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우상이 때론 목사라는 직분 그 자체임을 고백한다. 타자에 대한 욕망 속에서 타자를 배제하기 일쑤인 종교의 배타성은 타자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준엄한 자기비판과 성찰적 믿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말씀과 더불어.
지금 한국은 G20정상회의 개최로 시끌벅적하다. 열강의 정상들이 집결하는 모임의 의장국으로서 식민지에서 올라선 유일한 강국이라는 찬사를 듣는 것도 가슴 뿌듯하다.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함도 당연하다. 하지만 방송과 언론을 통한 대대적 홍보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공감대가 조성되었다고 판단키는 어려워 보이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제통화 공조체재의 구축을 통한 환율 통제로 세계 의 산업경쟁력을 조정하려는 정상회의의 중대한 역할을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같은 시간, 국가인권위원회는 파행으로 치닫고, 한․미FTA 추가협상에 대한 농민들의 절규는 쓸쓸이 메아리친다. 국회마저 검찰의 기습적 선거자금 수사에 대한 규탄으로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처럼의 국가적 대행사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준엄한 자기성찰이다. 우상은 결코 성전 안에서만 거하는 그 무엇이 아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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