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영화’란 일본영화계만의 독특한 영화장르로 극장상영용 35mm 성인영화를 지칭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일본에서는 대형영화사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는 독립제작사에 의해 시작됐다. 열악한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핑크영화는 큰 인기를 얻었고, 에로스 속 드라마와 실험정신,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50여 년간 명맥을 이어왔다. 핑크영화 제작에는 엄격한 방식이 존재한다. 감독은 3~5일의 촬영기간, 제작비 300만엔, 상영시간 60분이라는 기준을 지켜야 한다. 또한 성인영화이기 때문에 5회 가량의 성행위 장면, 2명 이상의 여배우 출현도 조건이다. 다만 성기 노출 금지 등의 엄격한 기준이 있어 일반 ‘포르노’와 차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만 지키면 감독의 자유로운 창작이 보장된다. 이 때문에 핑크영화는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 등 일본영화의 재목들을 탄생시켰다.

 

목욕탕에만 ‘여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제에도 ‘여탕’이 있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면서 목욕을 할 수 있나’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이 용어는 ‘핑크영화제’에서 여자들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도발적인 문구와 포스터에 이목을 사로잡힌 관객들은 상영시간표를 확인하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택하고 있었다.
‘핑크영화제’는 오직 성인 여성을 위한 영화제이다. 2007년에 시작돼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한 이번 영화제는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영화관 ‘씨너스 이수점’과 ‘씨너스 이채점’에서 열렸다.
올해 주제는 ‘진화, 도발, 초월’이다. 이에 걸맞게 파격적이고 신선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선보여졌다. 시기나 장르에 의해 총 5개의 섹션으로 나뉜 영화들에는 각각의 개성이 잘 담겨있었다. 1960~1970년대 성을 투쟁과 실험의 무기로 끌어 올린 영화를 모은 ‘핑크 마스터피스’,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소프트 핑크’ 등 총 15편의 특색있는 영화들이 관객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았다.
‘15세의 매춘부’ ‘옷장속 마이펫’ ‘S&M 헌터’ 등 다소 자극적인 제목에 영화간을 찾은 관객들은 민망한 웃음을 짖기도 했다. 반면에‘여성들도 당당하게 성인영화를 즐기자’는 이 영화제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어떤 관객들은 영화의 수위까지 확인해가며 탁월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자만 에로영화 보나요? 여자도 봐요”라고 말하는 당찬 관객, “이런 영화제가 있다니 마냥 신기해요. 여성 영화제, 인권 영화제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네요”라며 재미있어 하는 관객 등 영화를 대하는 모습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이색적인 영화를 접한다는 호기심에 들떠있었다.
“핑크영화제에 처음 참여하지만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어요. 오히려 성인 영화에 거부감을 느끼고 오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은 단순히 편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인이 성인영화를 보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핑크영화제, 여자들끼리의 묘한 동질감도 느낄 수 있고 영화소재도 참신해서 재밌네요. 내년에도 또 오고 싶어요.”(박영롱, 20세, 여)
원래 핑크영화제는 여성 관객에게만 입장이 제한됐으나 올해부터는 5~7일에 한해 남성 관객의 입장을 확대했다. 영화제를 찾은 한 남성 관객은 “여자친구가 특색있는 영화를 보자고 해서 왔는데, 영화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유쾌하고 자유로운 것 같아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기대돼요”(김장호, 26세, 남)라고 말했다.
핑크영화제에는 흥미로운 부대행사와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 특히 올해에는 영화제를 기념해 내한한 핑크영화 감독, 배우들과 관객들의 ‘핑크 토크’, 영화 <페스티발>을 만든 이해영 감독과 카타오카 슈지 감독의 ‘SM 토크’ 등이 열려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또한 영화 시작 전, 핑크영화제에 대한 문제를 관객들에게 내고 선물을 주는 등의 이벤트도 있어 영화제를 찾은 이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안겨줬다.
영화를 관람한 한 여성 관객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이야기 구성이 탄탄해서 놀랐어요. 또 여성들도 작품성 있는 성인 영화를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즐길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사회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보기를 꺼리잖아요. 저도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성인영화를 당당히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여자들만 있어서 그런지 편하게 봤어요. ‘여자를 위한 성인영화제’라는 문구가 와닿네요”라며 이 영화제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대한민국은 영화제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영화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보다 이색적인 영화제가 있을까. 단순한 성애영화가 아닌 성에 대한 자유로운 담론,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까지 가득한 ‘핑크영화제’. ‘제4회 핑크영화제’는 상상을 뛰어넘어 도발적이며 충분히 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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