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뒤지고 생각을 해도 가난한 나에겐 서글프게도 재산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화폐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 있음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 政外科(정외과) 一年 이계연 …… 비오는 날, 어느 외국인 가수의 낮은 노래가 들리고 우리는 의미 없는 말들을 웃으며 지껄일 때 나에게 접어준 구겨진 종이꽃. 물론 다른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물건이지만. - 經濟科(경제과) 二年 이영은 …… 제3호 짜리론 조그마한 애기 하모니카예요. 내가 언제 이걸 그리 좋아 했으리까마는 테이프 레코드에 처음으로 녹음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 商科(상과) 四年 이광자
<1964년 12월 7일, 숙대신보 163호 중 일부 발췌>

 46년 전 숙대신보에서는 입학 선물로 받은 손목시계부터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방명록, 하숙방의 전기 煖爐(난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淑明人(숙명인)들의 재산목록을 公開(공개)했다. 사랑과 젊음을 基本財産(기본재산)으로 한 선배들의 재산 목록에서는 소박함이 한껏 묻어난다. 그렇다면 2010년 현재 우리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을까. 여기 설문에 동참해 준 많은 학우들 가운데 3명에게 그들의 재산목록 1호부터 3호까지를 들어봤다. 일일이 원고를 받았던 1964년도와는 달리 2010년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의견을 받아봤다.


◆自然科學部(자연과학부) 一年 민경아 : 재산목록 1호는 통장이에요. 대학생이 되면 유럽 배낭여행을 가겠다는 마음으로 중학생 때부터 조금씩 모아온 용돈이 담겨있죠. 지금은 꽤나 많은 돈이 모여서 유럽 배낭여행 말고도 또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계획을 세우는 중이에요. 2호는 제가 키우는 집토끼 친칠라. 키우기도 쉽고 귀여워서 요즘 친칠라 키우는 재미에 빠져있어요. 3호는 아버지가 주신 필름 카메라인데요.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다니는 최신 DSLR 카메라도 아니고, 많이 낡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주셨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어요.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도 좋고요.


◆人文學部(인문학부) 二年 조수민 : 저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노트북이에요. 이 노트북으로 과제뿐만 아니라 인터넷 서핑도 하고 뉴스도 읽죠. 제 2호는 제빵 도구들이에요. 제가 요즘 취미로 빵을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사용될 도구들이라 항상 깨끗하게 잘 챙겨놓아요. 마지막 3호는 휴대폰이에요. 휴대폰은 친구들과 연락을 하거나 약속을 잡을 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저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재산이죠.


◆言論情報學部(언론정보학부) 四年 김유리 : 제1호는 DSLR 카메라에요.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일수록 예쁘게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큰 맘 먹고 장만했어요. 2호는 어렸을 때부터 써온 일기장과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꺼내볼 때마다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요. 3호는 제가 그동안 바다 건너 나라를 왕래하면서 모았던 엽서들이에요. 그 나라들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어요. 다녀온 나라의 수가 늘어날수록 엽서의 수도 늘어나 뿌듯하기도 하죠.


50년에 가까운 歲月(세월)이 흐르는 동안, 숙명인들이 아끼는 물건들에는 커다란 變化(변화)가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재산 목록의 상당 부분을 電子製品(전자제품)이 차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여기에 실리지 않은 다른 많은 學友(학우)들 또한 스마트폰이나 넷북 등을 소중한 재산목록으로 꼽았다. 요즘은 해외 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워지면서 해외 여행을 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는 학우들도 많았다. 다수의 학우들이 재산목록에 化粧品(화장품) 모음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예전에 비해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숙명인들의 재산목록에서도 추억이 담긴 소품이 꼭 하나씩은 들어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부모님께 받은 선물 등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貴重(귀중)한 재산으로 손꼽혔다. 시대가 바뀌고 그에 따라 여대생들의 인식도 변했지만, 그 바탕이 되는 靑春(청춘)의 생기발랄함은 그대로였다.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재산목록. 50년 뒤 숙명인들의 재산목록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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