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자양고등학교)

자화상

네팔의 하늘은 티 없이 맑은 코발트색이었다. 매연과 먼지로 오염된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이었다. 이 하늘을 본 것만으로도 여행 온 보람이 있었다. 상희야, 나랑 같이 네팔에 가자. 거기 하늘이 빠져 죽고 싶을 만큼 아름답대. 네팔 가이드북을 덮으며 이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네팔은 무슨……. 내가 말끝을 흐리자 이모가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 여름방학을 집에 박혀 보내면 안 되지. 뭐든, 마지막이 중요하거든.
 네팔에 오게 된 건 그 마지막이라는 말에 끌려서였다. 나는 여름방학이 끝나면 학교를 자퇴할 생각이었다. 적당히 성적에 맞춰 되는 대로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며 살고 싶었다. 문제는 이 말을 어떻게 부모님께 전해야 할지였다. 펄쩍 뛸 부모님 얼굴이 불을 보듯 뻔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이모가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이모 목에 걸린 사진기가 햇빛에 반짝였다.
 이모는 네팔에 오기 전에 이혼을 했다. 집안식구들 모두 반대했고, 이혼한 후로도 틈만 나면 이모를 몰아세웠지만 이모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모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싱긋 웃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바로 문제야, 모든 게 너무 완벽하고 아름다운 데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이모는 어느 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너무 두려워졌다고,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 답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 이모의 눈빛은 저 네팔 하늘과도 같았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대답과 그 눈빛이 나를 이 네팔 여행에 데려온 이유와 결코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미루어 짐작했다. 내 자퇴 계획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눈치 챈 듯한 이모가, 단지 내게 네팔의 아름다운 하늘빛을 보여주려고 이 먼 곳까지 끌고 온 건 아닐 테니까.
 이모는 사진기로 네팔의 하늘과 사람들을 찍어댔다. 저 멀리서 군중들이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이모, 저 사람들 뭐야? 왜 저렇게 몰려든 건데?”
 이모가 주변 사람에게 손짓을 해 가며 뭔가를 물었다. 내가 묻자 이모는 쿠마리 때문이야, 하고 짧게 답하고는 다시 정면을 보았다. 이윽고 맨 앞줄부터 환호성이 번져나갔다. 화려하게 장식한 가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가마에는 짙게 화장을 하고 보석 장신구를 두른 소녀가 타고 있었다. 기껏해야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귀여운 얼굴이며 자그마한 체구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어린아이였다. 다만 표정만은 아이답지 않게 무표정했다.
 저 애가 바로 쿠마리야, 하고 이모가 말했다. “쿠마리라는 건 네팔에서 탈레주 여신의 화신이라는 여자아이를 가리키는 말이야. 쿠마리는 전대 쿠마리가 물러나면 열 살 안팎의 여자애 중에서 선출하는데, 선출 조건이 서른 몇 가지나 된다나, 여러 후보들 중 이 기준을 다 통과한 단 한 명의 아이만이 쿠마리가 되는 거야. 집안에서 쿠마리가 나오는 건 그 집안엔 대단한 영광인데다, 당사자는 쿠마리 궁으로 따로 옮겨져서 여신으로 대접받아. 그리고 가족들도 호의호식하며 살지.”
 이모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건성으로 들으며 그럼 좋은 거네?하고 되물었다. 예언을 받고 싶은 사람이나 축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쿠마리 앞에 나아갔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결과적으로 쿠마리의 앞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결국 쿠마리의 호위병들이 남은 사람들을 모두 쫓아버렸다. 쿠마리를 태운 가마는 천천히 멀어져 갔다. 이모는 꼼짝 않고 쿠마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옆얼굴에 짙은 그늘이 깔렸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아까 보았던 쿠마리의 표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쿠마리는 월경을 시작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해. 피를 흘리는 건 이미 여신으로서 부정을 탄 거라고 생각하거든. 다쳐서 피를 흘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야. 그럼 그 애는 그동안 여신이랍시고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다가 갑자기 보통 여자애로 돌아가게 돼. 거기다 쿠마리였던 여자와 결혼하면 남편이 일찍 죽는다느니, 쿠마리였던 딸이 돌아오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느니 하는 미신이 있어서…….”
 이모는 말끝을 흐리고는 고개를 살짝 외로 돌렸다.
“그래도 신으로 살면 평생 행복할 것 같은데,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을 거 아니야?”
“혼자가 되는 건 외로운 거야. 내가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나보고 미쳤다고 하더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왜 그 길을 걷어 차냐고,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야. 완벽한 조건들이 다 갖춰져 있지만 나는 늘 텅 빈 느낌이랄까. 하얀 종이처럼 내가 점점 지워져 가는 것 같았어. 이혼한 건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어서야.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기 전에 날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었어.”
 여전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알 것 같았다. 이모는 저 쿠마리에게서 이모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이모도 저 쿠마리도, 비슷한 고독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쿠마리와 이모의 표정이 그토록 닮아 보였던 건 그런 이유였구나. 내 표정이 심각해지자 이모가 한 마디 덧붙였다.
“저 쿠마리가 원한 건 여신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냥 보통 아이들의 삶이었을지도 몰라, 상희 넌 그런 거 없어?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네가 진짜 원하는 무엇.”
 내가 진짜 원하는 무엇……. 나는 이모의 말을 속으로 읊조려 보았다. 가슴이 찰랑이는 것만 같았다. 이모와 쿠마리의 또 다른 공통점이었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간절히 원한다는 점.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이모를 닮아있었다. 어쩐지 이모가 네팔까지 나를 데려온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혼자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내게 있을까? 내 길을 가기 위해서 외로움과 맞설 준비가 나는 되었을까.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바람 속에서 짙은 향신료 냄새가 났다.
 바람은 어디가 길인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향해 불고, 하늘은 어디가 끝인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도착할 곳을 향해 흘러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좀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쿠마리의 모습이 저만치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이모의 손을 잡은 채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저 모습을 각인시키기 위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 훗날에도 잊지 않기 위해, 지금 나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쿠마리 사진을 찍는 것은 중죄라고 했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듯, 눈을 슬쩍 감았다 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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