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2일(월요일) 1194호

다문화@호주

‘다문화(Multiculture)국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어디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을 꼽는다. 그러나 이민과 다문화에 관해서라면 호주(Australia)도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18세기부터 호주는 아시아 남미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지금의 다문화 사회를 이뤄왔다.

어찌 보면 미국과 호주는 다인종 사회라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회는 이민자의 적응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사뭇 다르다. 미국사회는 이민자들이 지닌 문화적 배경이 뒤섞여 하나의 ‘아메리칸 컬쳐’를 형성했다. 미국 사회는 새로운 이민자들이 이러한 미국의 문화에 ‘동화’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미국을 두고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 즉 멜팅 팟(Melting Pot)이라 부른다.

그러나 호주는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백호주의(백인 우월주의)’를 철회하며 이민자들이 각자가 가진 모국의 문화를 존중하기로 결심한다. 그 이유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이 호주라는 하나의 그릇에 안에서 공존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를 일컬어 미국사회의 멜팅팟에 대비되는 호주사회의 샐러드 볼(Salad Bowl)이라 한다. 호주의 다문화주의는 이처럼 다양한 문화가 샐러드 재료처럼 고유한 맛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관점인 것이다.

“담임을 맡고 있는 당신의 학급에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있다. 학생들은 자신들과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한국말이 어눌하다고 왕따를 시킨다. 교사로서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이는 지난 해, 중ㆍ고등학교 교사 임용시험 면접 시, 면접관이 예비교사들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문화적 다양성’과 최근 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ㆍ결혼이주민을 교육 분야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7명의 교육학부 학우(이미현, 이지혜, 이정아, 이혜리, 전미강, 조혜민, 최지인)와 박소영(교육학 전공)교수가 2009 동계 글로벌 탐방단을 계기로 모였다. 교육학부 탐방팀은 ‘한국 다문화교육의 지향점’이라는 주제로 호주에서 7박8일간 머물며 다문화 관련 기관을 방문했다.

팀장을 맡았던 이미현 학우는 “시드니가 위치한 뉴사우스웨일스주(New South Wales State, 이하 NSW주)는 백인을 비롯해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고 있어, 다문화정책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다문화교육에 특화된 성인, 초ㆍ중등 교육기관이 많아 이 도시를 선정하게 된 것이죠”라고 말했다.  탐방단은 다문화 교육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채츠우드 고등학교(Chatswood High School)과 이민자를 위한 NSW주정부 영어교육기관인 △AMES를 방문했다. 또한 △영락문화학교를 방문해 수업을 시연했으며,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이들을 위한 △한글학교협의회와 △시드니 한인회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드니 대학(Sydney University)에서 헤리티지 투어(Heritage Tour)를 받고 국제학생센터(International Student Center)를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채츠우드 고등학교(Chatswood High School)
“처음 학교에서 다문화 정책을 발표했을 때, 한 백인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왜 다문화정책을 시행하나요?’라고 물었어요. 나는 창밖을 가리키며 ‘이곳이 다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라고 답했습니다. 창 너머로는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즐기며 함께 어울려 있었어요.” 이는 채츠우드 고등학교(Chatswood High School)의 교장 수 로우(Sue Low)가 탐방단에게 들려준 일화이다. 이 학교 학생의 70%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며, 그들 중 대부분이 ‘이민’을 경험했다. 따라서 다채로운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다문화 교육’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학생들은 ‘하모니 데이(Harmony Day)’를 통해 여러 나라의 대표적 음식과 의복 등을 서로에게 알린다. 이는 서로 다른 음식과 의복 문화를 체험하는 것을 통해 그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행되어 오고 있다. 또한 이 학교는 학생들이 모국어를 계속해서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토요언어학교(Saturday School of Community Languages)’를 운영한다. 학생들은 정규교과과정에서 중국어, 베트남어, 한국어 등 모국어수업을 제공받는 셈이다. 이와 같이 학생의 ‘언어적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주정부의 교육부에서 예산을 지원해주고 있다.

 NSW주의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채츠우드 고교와 같이 ‘다문화 언어’교육에 집중한다. 다문화를 학교에서 존중하기 위해 주정부는 교육법령에서 “학생의 문화적ㆍ종교적ㆍ언어적 다양성을 반영하고,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다문화 정책을 기반으로 NSW주는 각각의 공립학교가 다문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고, 언어 교육 외도 ‘반인종주의 교육(Anti-Racism program)’ 등을 시행하고 있다.

◇=성인이민자를 위한 교육기관
한편 호주 정부는 ‘성인’이민자를 위한 교육기관인 AMES를 운영해 이민자들이 호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민자들이 호주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무엇보다 ‘의사소통’이다. 이 때문에 AMES에서는 일상생활과 직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어를 이민자들에게 교육시킨다. 그러나 한국에는 AMES와 같이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한국어와 직무용어를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정부 산하 기관이 없는 실정이다.

AMES의 교육센터 관계자 오웬(Owen Lowe)은 “이곳에서는 이민자들에게 무료로 영어교육을 제공하고 있어요. 지난 1952년부터 백만 명 이상의 이민자들이 이곳을 거쳤어요”라고 하며, 센터는 이민자에게 영어교육뿐만아니라 직업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도 제공한다고 했다. 그는 AMES에서 교육받은 이민자들이 실제로 높은 취업률을 보인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호주에서 영어를 하지 못한다면 낮은 임금에 오랜 시간을 일해야 하는 단순노동직에 종사 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센터의 마케팅 담당자인 베테니 에보트(Bethany Abbott)은 “정부가 다른 나라로부터 이민노동자를 받아들였다면 그들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노력해야합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정부가 져야합니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영락문화학교
탐방단은 다인종사회 호주에서 처음으로 소수인종의 ‘문화’를 전하는 학교로 허가받은 영락문화학교를 방문했다. 영락문화학교는 시드니 한인영락교회 소속으로 한인과 Telopea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친다. 영락문화학교는 <한국고전무용> <태권도> 수업을 운영하며,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하는 지역주민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있다. 전미강 학우는 “이 영락문화학교를 통해 호주 정부의 다문화 지향적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탐방단은 이 곳에서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 40여 명을 대상으로 ‘다문화’를 상징하는 하모니 트리(Harmony Tree)를 함께 만들며, 아이들에게 다문화가 전제하고 있는 ‘존중’ 그리고 ‘조화’의 원리를 설명했다. 수업을 진행했던 최지인 학우는 “아이들과 함께 다문화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어 기뻤어요”라며 이번 수업이 선생님으로서 첫 수업이라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글학교협의회
NSW주는 이와 같은 문화학교의 언어교육과 공립학교의 토요언어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체계화하기 위해 교사 자격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수업을 진행 할 수 있도록 주정부가 직접 교사연수를 시행한다. 한글학교협의회는 이러한 다문화 언어교육정책과 같은 목적으로 NSW주정부 교육부서와 지역학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한글학교협의회의 임송본 회장은 “호주정부는 한국인 러시안, 중국인, 동남아계 등 호주 내 다양한 인종그룹의 모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요”라며, 한국에서도 이민자를 위해 한국어 교육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한국어 교육과 더불어 모국어에 대한 교육 지원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조언했다.

◇=시드니 한인회
지난 2008년 말 법무부의 외국인정책 본부는 우리나라의 체류 외국인(2007년 기준)은 백만 여명으로 우리나라 총 인구 대비 2.2%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 여성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곧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조혜민 학우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의 입장과 호주 내에서의 소수민족인 한인의 입장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인회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한국 내 외국인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라며 호주가 한인사회를 배려한 만큼 우리도 먼저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함을 느꼈다고 했다.

시드니 한인회 사무총장인 우동훈씨는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외국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법ㆍ제도를 설립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호주 내 한인은 호주 사회에서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복지의 혜택과 공평한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 씨는 “한국정부가 먼저 문화갈등, 인종갈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전에 앞서 이민자들에 대한 문화적 존중을 하고, 그들이 각각의 문화를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며, 호주 정부의 경우 코리안 데이(Korean Day), 필리핀 데이(Philippine Day) 등을 지정해 여러 소수인종의 문화 축제를 열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됐다. 한국의 다문화교육이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다문화 교육’에 대한 연구과 공교육의 제도는 부족하다. 열정을 지닌 교육학도들이 호주의 열린 ‘다문화교육’을 체험하고 돌아왔다. 이들의 값진 경험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다문화 교육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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