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새터민 여성 문제, 중국 내 탈북 여성 인권 유린

 

지난 4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의 한 회장에서 100여 명의 청중과 기자들의 이목은 선글라스를 낀 한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박연화(가명, 40)씨는 마이크 앞에서 숨을 몰아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탈북여성들은 중국에서 머물다 북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송되면 죽거나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런데서 뇌물을 먹이면 빠져나올 수가 있어요. 저는 중국 공안에 붙들릴 것을 대비해 항상 자궁 속에 돈을 넣어놨었어요.”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 등의 제 3국에서 지냈던 탈북자들 중에서 대한민국을 선택하여 입국한 이들은 총1만 7천 여 명이다.(통일부 정착지원실 통계자료, 2009년 2월 기준) 이들의 절대 다수는 2000년대에 입국한 사람들이며, 그 중 여성은 1만 1천여 명이다. 남한으로 들어오는 전체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은 절반을 넘는 65%정도이다.

지난 2009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탈북여성의 탈북 및 정착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 여성들이 북한에서부터 탈북과정을 사례별로 담고 있으며, 그들이 남한에 정착할 때까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접적이나마 보여준다. 또한 지난 4월 28일에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과 ‘탈북여성인권연대’의 주최로 <나는 고발한다-북한여성의 인권침해> 정책세미나가 열린 바 있다.

◇=탈북 여성들 중국ㆍ제3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지내며 고된 시간 보내

탈북자들은 북한을 벗어난 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에 일정기간 동안 체류하게 된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대에 머무르며, 돈을 벌어 북한의 가족들에게 보내거나, 남한으로 들어오기 위한 자금을 번다. ‘인권위’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또는 제3국에서 탈북여성의 삶은 상당히 비참하다.

중국 내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간병인, 식모, 주방보조와 같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신분적 약점 때문에 합당한 임금을 지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일부 여성의 경우 인신매매를 당해 성매매를 강요받거나, 불법체류 상태라는 약점 때문에 성폭력과 성추행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탈북여성연대’의 총무팀장 곽혜영씨는 “중국 내에서 탈북 여성을 사고 파는 시장이 조직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들었다. 중국 깡촌에 한족 중국인 남성에게 팔려가거나, 젊고 예쁜 여성들은 성매매 시장으로 팔려간다. 한번 팔려가서 적응을 못하면 또 팔려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곽 씨는 이와 같은 경험을 탈북 여성이 남한으로 오면, 하나원 연수기간동안 상담치료를 등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나원에서 나가게 되면 많은 새터민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상담과 치료를 받기위해서는 탈북 여성 스스로가 도움을 요청해야하는데, 대부분이 자신의 경험과 상처를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 같은 여성들에게 치료와 상담을 받으라고 강제할 수 없다. 탈북 여성들이 하나원을 나간 뒤로 정부는 탈북 여성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새터민 여성 한국사회에서 적응하기까지

탈북여성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획득함과 동시에 ‘북한이탈주민 지원법’에 의해 다양한 지원 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탈북자 약 2천여만 원(1인 기준)의 정착지원금(연령, 경제활동 능력 등과 같은 기준에 따라 지급)을 제공하며,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하나원은 통일부 산하 기관으로, 탈북자들이 처음 입국 한 뒤 3개월~4개월 정도 남한사회에서의 정착을 위한 교육을 시켜주는 곳이다. 하나원은 한국폴리텍대학 등과 협력해 탈북민들의 기초직업적응훈련을 시키고 그 이후에는 노동부와 연계해 희망하는 이에 한해 전문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여성에 대한 기초직업교육이 ‘여성 적합 직종’에 국한돼 있음이 드러났다. 탈북여성에 대한 하나원의 기초직업훈련교육은 요리, 재봉, 제과, 제빵, 간호 등 우리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여성의 직종이라 이미지가 굳혀진 직업의 교육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또한 짧은 직업교육기간으로 인해 많은 탈북민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지난 2004년 탈북해, 2008년 남한으로 온 강모씨(여ㆍ36)는 서울 용산구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다. 강 씨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기 전에 초등학교의 학교 급식소, 인쇄소에서 일했으며 평균적인 한 달 임금은 100~12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10대~ 20대 탈북자 여성의 경우 중ㆍ고교에 진학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30대~40대의 새터민 여성들은 남한에서 대학교육 또는 전문직업교육을 받기보다생계를 위한 직업전선에 곧바로 뛰어든다. 그렇기에 이 연령대의 여성들이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은 단순 생산직과 서비스직에 머문다.

곽 씨는 “사실 탈북민 여성의 상당수가 북한 내에서 교육도 많이 받은 엘리트였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전문직 또는 사무직으로 취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업무 시 ‘영어’가 많기 때문에 원활히 의사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무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고 말했다.

◇=새터민 여성 결혼 중개업소

최근 지하철 광고판에 부착된 ‘생활력 강하고, 미모와 신분이 확실한 새터민(북한여성)과 결혼하세요’과 같은 결혼중개업소의 광고 전단지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광고물은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 여성과의 결혼을 선전하고 있으며, ‘참신한’ 새터민 여성회원을 모집한다는 문구도 적혀있다.

곽 씨는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에 오게 되는 ‘결혼이주여성’과 새터민 여성의 상황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새터민 여성들은 남한에서 정착하기 위해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결혼을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 중개업소를 찾기는 하지만 문제는 건전하고 합법적인 중개업소가 많이 없다는 점이다.”

 

글ㆍ사진 김윤 기자



◇=탈북여성단체와 북한인권대학생 단체

중국 내 탈북자와 새터민 지원을 위한 여러 인권단체들은 있고, 북한의 식량난으로 탈북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지난 10여 간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여성탈북자와 여성새터민을 대상으로 특화한 인권단체와 비영리단체는 없었다. 지난 2006년 8월 ‘탈북여성인권연대’는 탈북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남한에서의 안정적인 정착과 행복한 삶을 도모한다는 목적에서 출범했다. 이 기관의 특징은 바로 탈북여성이 주축이 돼 자생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점이다.

‘탈북여성인권연대’는 통일부와 여성부 산하 기관이 아니라 협력기관이며, 미국 국무부와 미국민주주의 재단(NED)라는 비영리기구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인 (사)열매나눔재단과 함께 공장과 커피전문점 등을 운영하며 새터민 여성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또한 ‘탈북여성인권연대’에서는 중소기업과 새터민 여성의 취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새터민 여성을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 멘토프로그램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덧붙여 탈북과정 시 겪었던 인신매매경험, 중국남성과의 매매결혼, 남한에 와서 겪은 차별을 담은 새터민 여성의 인터뷰 영상을 제작해 웹사이트(www.nkwomen.org)에서 공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학생들이 모여 북한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북한인권청년연대’와 새터민 학생들이 만든 ‘탈북청년연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학교 내에도 북한인권동아리 H.A.N.A(이하 ‘하나’)는 학내에서 북한 인권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새터민을 초청해 탈북과정과 남한에서의 생활을 듣는 좌담회도 주최한다.

‘하나’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인지(정치행정 08)학우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와 새터민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이 꾸준하게 가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여대에 있는 북한인권동아리이기 때문에 새터민 여성의 문제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탈북여성연대’ 등과 함께 새터민과 탈북여성의 인권에 대한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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