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의 한 월세방에서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다. 시신의 온 몸에는 피멍이 들어있었고 자궁 속에는 맥주병 2개가 박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항문부터 직장까지는 우산대가 꽂혀져 있었다. 이 여성은 왜 이렇게 처참히 살해됐을까.
이 사건의 피해자는 ‘윤금이’라는 미군 전용 클럽의 종업원이었다. 피의자는 미 2사단 제20보병연대 5대대 소속의 마클 케네스 리(Markle Kenneth Lee) 이병으로 밝혀졌다. 둘은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클럽에서 얘기를 나눴었다. 사건은 그들이 윤금이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시작됐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케네스는 제이슨 램버트라는 미군과 시비가 붙게 된다. 흥분한 케네스는 분풀이를 윤금이에게 돌렸다. 케네스는 그녀를 집안으로 끌고 간 뒤, 병으로 이마를 여러 차례 쳤다. 결국 윤금이는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한국 사회는 미군에 의한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미행정협정(SOFA)나 치외법권으로 쉬쉬됐던 미군 범죄가 사회의 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또한 윤금이 살해사건으로 사람들은 기지촌 여성들의 위험한 상황을 인식하게 됐다.
윤금이 살해사건 이후, ‘주한 미군의 윤금이 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결성됐다. ‘공대위’에서는 미군 범죄의 진상 규명과 피의자 처벌을 요구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상인들은 ‘미군 병사에게 상품 안 팔기 운동’을, 택시기사들은 ‘미군 승차 거부운동’을 펼치며 ‘공대위’의 활동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케네스는 15년형을 선고받았고 1994년 5월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됐다.
당시, 시민운동 단체부터 언론까지 이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며 주한미군의 잔인한 범죄를 비난했다. 또한 대중은 미군에 의해 ‘우리의 딸’ ‘우리의 누이’가 죽음을 당했다며 분노했다. 일본의 ‘군 위안부’ 사건이 화두에 올랐을 때처럼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여론은 이 사건을 두고 ‘성매매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국민을 살해했다는 점에 집중했다.
결국 이 사건은 사회에 일시적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을 일으켰을 뿐, 윤금이와 같은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개선시키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관심이 수그러들자 사람들은 또다시 경멸의 눈초리로 기지촌 여성들을 바라봤다. 또한 그 이후로도 윤금이 사건과 같은 뮤니크 이병의 이기순 살해사건(1996년), 매카시 상병의 이태원 김 양 살해사건(2000년) 등이 발생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살인과 폭력에서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지촌의 모습은 어떨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업소에서는 한국 성매매 여성의 자리를 외국인 성매매 여성이 대신 채웠다고 한다. 또한 성매매 여성의 인권 유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실정이라고 알려진다. 실제로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은 불법 체류자 신분까지 겹쳐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한국 사회 속에서 기지촌 여성과 같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매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매매 여성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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