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예술가에게 듣는다② 여성 연극인

 

여성 연극인 기획 김국희(산업공예 88졸) 현 공연예술연구소 AURA 대표

“연극을 본 적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요. 영화는 익숙한데…. 연극은 낯설어요”라며 꺼려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연극을 관람해 본다면 생생한 현장감과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재미로 다시 한 번 공연장을 찾을 것이다. 이러한 연극의 매력에 20여 년간 중독된 여성이 있다. 바로 연극 연출가이자 공연예술연구소 ‘AURA'의 대표인 김국희 씨이다. 그녀의 연극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극은 배고프다’라는 선입견이 있다. 이에 김 대표는 “옛날에는 정말 그랬어요. 연극이 너무 좋아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일을 했죠”라며 옛 기억을 되짚었다. 우리나라 연극계는 제작 환경이 좋지 못해 많은 연출가들이 자신의 사비를 들여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김 대표도 이러한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처음 제작과 연출을 함께 했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제작자가 중간에 도망을 가서 제가 경제적 부담을 져야 됐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했죠. 그런데도 돈이 없어서 배우들 개런티도 못 주고 티켓도 제대로 못 팔았어요. 저나 배우들이나 연극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못 버텼을 거에요.” 그러나 그는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연극으로도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연극 작품도 많아지고, 연기 수업을 받으려는 사람도 늘어나서 돈을 벌고 못 버는 것은 자기가 얼마나 기회를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의 어머니는 고된 연극일 때문에 아직도 그가 연극을 연출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낸다고 한다. 김 대표가 이렇게까지 연극 연출가라는 직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다른 공연 예술과는 차별된 연극만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연극은 종합 예술이에요. 사회, 정치, 음악, 미술, 오락 등 모든 것을 담아내죠. 어떤 관객이든지 연극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어서 작품을 보고난 뒤에는 연극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외에도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보다 생생하게 녹아있다는 것, 사람과 사람이 직접 부대끼면서 장면을 하나하나 완성한다는 점을 연극만의 특징으로 꼽았다.

김 대표는 4학년 때 처음으로 우리 학교 연극 동아리 ‘반극회’에서 연극을 연출했다. “그 당시에 <도가니>라는 작품을 연출했는데,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에 희열을 느꼈어요.” 그는 첫 연출의 감동을 잊지 못 해 연출가라는 진로를 선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극단에 들어가 연출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졸업을 한 뒤 첫 작품을 연출했을 때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다.

“나이도 어렸고 특히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남자 배우들한테 무시를 많이 당했어요. 연기를 지도하면 못하겠다는 태도를 강하게 내비치고, 대사를 자르면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죠. 오죽하면 ‘빨리 나이 먹어야지’라는 생각까지 했겠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출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김 대표. 그러나 지금은 그녀만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누구보다 더 원활하게 연극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지도해요. 절대 큰 소리 치지 않죠. 연출할 때 가장 힘든 점이 소통의 문제인데, 여성 연출가들은 이 점에서 더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거의 모든 작품에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낸다. 그 중에서도 그는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가 작품 속에 담고 싶은 여성 문제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가정 내 남녀 간의 불평등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에요. 시대가 변했지만 아직도 여성들이 억압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여성은 직장을 다니면서 가사, 육아에도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김 대표는 이러한 문제들을 담담히 작품에 담아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에 불쾌한 반응을 보인 관객도 있었다. “<그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종속한다는 내용을 담았어요. 그 때 여성 관객들은 통쾌하다며 좋아했지만 일부 남성 관객들은 오히려 불편한 내색을 보이기도 했죠.” 김 대표는 앞으로도 작품에 여성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담을 거라고 말하며 깊은 관심을 표했다.

20년의 세월을 연극과 함께 한 김 대표의 작품에는 경험과 연륜이 묻어났다. 먼저 김 대표에게는 배우로부터 최상의 연기를 뽑아낼 수 있는 그만의 방법이 있었다. “연극은 곧 표현인데, 표현하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연기를 가장 잘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배우와 연출가가 머리를 맞대고 여러 방법을 생각해 그 안에서 최적의 답을 고르는 것이죠. 결정은 배우에게 맡기는 편이에요.”

오랜 시간 연출을 한 김 대표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일까. 그는 2008년 연출작인 <적빈>을 선택했다. <적빈>은 1920년대 백신혜 작가가 쓴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소재가 좋았어요. 관객들의 공감대를 많이 이끌어내서 인기도 있었죠. 특히 나이가 많으신 관객들은 소리 내서 울더라구요.”

김 대표는 연출가에게는 열려있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열린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돼요. 난로를 보다가도 ‘난로와 관련된 사연이 뭐가 있을까, 이런 갈등이 있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막힌 사고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관객들이 연극에 최대한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 예로 김 대표는 국립극단의 <테러리스트 햄릿> 중 햄릿과 오필리어가 갈등하는 장면을 언급했다.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으로 가시오!’라고 소리침과 동시에 오필리어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녀요. 다음 장면이 오필리어가 미치는 장면인데, 충분히 여 주인공이 미칠만한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죠.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안 미치겠어요. 관객의 입장에서 너무나 몰입이 잘 되지 않겠어요? 그런 것이 바로 연출가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연출가로서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김 대표와의 인터뷰. 김 대표는 <테러리스트 햄릿>의 한 장면을 설명할 때, 몸소 그 장면의 연기를 보여줄 정도로 연극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유쾌한 웃음과 정열적인 행동은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 넘치는 그녀에게서 힘을 얻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