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사랑의 묘약’은 로시니, 벨리니와 함께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가 전성기 시대에 쓴 희극 작품이다. 가난한 청년 네모리노가 아름답고 지적인 아디나를 사랑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먼 발치에서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네모리노.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팔방미인 아디나이다. 아디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찾는 순수한 감성의 아가씨로 마을에 정착해 있는 돈 많은 군인 벨코레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구애한다. 하지만 아디나는 장교의 마음을 애태우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어느 날, 둘카마라라는 사기꾼 약사가 찾아와 마을을 뒤흔든다. 네모리노는 사랑의 묘약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 둘카마라를 찾아간다. 둘카마라는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이라고 속여 네모리노에게 전해준다. 약의 효과를 믿으며 고의적으로 아디나를 차갑게 대하는 네모리노에게 아디나는 원인모를 복수심을 품고 벨코레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때마침 네모리노의 숙부가 거액의 유산을 네모리노에게 남긴 채 죽는다. 마을의 모든 여인들은 네모리노의 유산을 보고 사랑을 고백하고, 유산탓임을 모른 채 이를 지켜보는 아디나는 마음앓이를 한다. 아디나는 자신의 마음에 갈등이 생김을 깨닫고 이러한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사랑의 묘약’은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이야기뼈대를 지니고 있다.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이 얽히고 설킨 연애이야기. 이 오페라는 19세기에 쓰여져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진부한 이야기를 가졌음에도 관객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색다른 연출이다.


이번 공연은 ‘2009년형 사랑의 묘약’이다. 한국에서 ‘첫 번째 여성 연출가’로 통하는 연출가 이소영은 현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연출을 했다. 원작의 배경은 어느 시골마을이지만 이번 공연의 배경은 어느 우주행성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 천을 타고 굴러 내려오는 공들과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주사위 등 다양한 소품들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각각의 소품은 각 인물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심리를 나타낸다.


아디나와 벨코레의 결혼 발표로 혼란스러워진 네모리노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공들, 남성적이고 우악스러운 벨코레의 권위주의는 탱크, 성냥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이 속아주는 ‘운’이 있어야하는 사기꾼 둘카마라는 운을 상징하는 주사위 속에서 알을 깨고 나오듯 등장한다. 자칫 휑해보일 수 있는 무대를 여러 장치와 소품을 이용해 빈틈없이 꾸민 점은 ‘알차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해준 일등공신은 바로 출연자들의 ‘연기’이다. 무대 위에서 줄을 타고 수직으로 내려오는 남다른 등장과 탱크를 일반 차량 주차시키듯 하며 심지어 무선경보기로 “삐빅!”소리를 내는 벨코레의 행동 공연초반 무겁게 눌려있던 공연장의 공기를 뒤바꿔 놓았다.


이 외에도 포도주에 취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네모리노, 약장수답게 오두방정을 떨고 대형스크린에 나타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손짓을 취하는 둘카마라의 모습은 관객들이 평소 ‘오페라’라는 장르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그 사이의 거리감을 순식간에 좁혀준다.


이러한 코믹한 요소들이 곳곳에 준비됐음에도 이 공연이 가볍지 않다고 느껴진 이유가 있다. 바로 유럽을 주름잡는 실력파 출연자들 때문이다.


아디나역을 맡은 임선혜는 세계가 주목하는 고전 소프라노다. 그녀는 유럽 바로크 고전음악계의 중심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오페라 가수로 2014년까지 스케줄이 꽉 잡혀있을 정도로 고주가를 달리는 성악가다. “성공이 보장된 아름답고 감동적인 목소리의 테너”라는 언론의 극찬을 받는 네모리노역의 조정기는 쾰른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둘카마라역의 심인성은 유일한 베이스 한국인으로서 최초 빈 국립오페라극장 소속 가수다. 모든 성악가들이 꿈꾸는 슈타츠오퍼 무대에서 2004년 이래로 ‘사랑의 묘약’ 둘카마라 역을 도맡아온 그는 세계 최고의 둘카마라다. 여러 국제 콩쿨을 휩쓸고 다닌 바리톤 강형구. 그는 유럽지역에서 오페라 ‘나비부인’, ‘돈 카를로’, ‘일토레 바토레’, ‘운명의 힘’, ‘투란도트’의 주역으로 출연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다른 성악가들에 비해서 젊은 실력파들의 출연은 공연을 보다 더 힘있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연기하는 30명 정도의 앙상블은 조연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번 공연은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좋았던 공연이 아니었다. 기자는 커튼콜에서 몇몇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장들이 출연한다거나 우아하고 웅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밖에서 인정받는 우리 예술인들의 조합이 바로 그 이유였다. 앞으로 해외원작을 기초로한 여러 공연들이 이번 공연처럼 한국적 각색과 맞물려 더 좋은 공연으로 탄생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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