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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담은 그곳, 당신의 행운을 비는 티베트 이야기
민유경 기자  |  smpmyk75@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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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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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기슭 깎아지른 계곡을 수 없이 지난 후에야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델리 공항에서 버스에 오른 지 15시간 만이었다. 해발 1800m, 인도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지(McLeod Ganj). 1960년 달라이 라마가 정착하면서 티베트 망명 정부가 들어선 곳이다. 이곳에 나라를 잃은 수많은 티베트 난민들의 삶이 녹아있다. ‘따시 델렉(안녕하세요)’ 거리에서는 따뜻한 티베트 인사말이 들려왔다. 드디어 티베트로 가는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하키, 티베트 아이들을 만나다
다람살라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는 무료 탁아소 ‘록빠(ROGPA)'를 찾았다. 이곳이 바로 기자가 다람살라에 온 이유였다. 일하는 티베트 부모를 지원하고자 2005년 문을 연 ‘록빠’에는 3세 미만의 아이들 40여명이 세계 각국의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했다. 기자는 ‘록빠’에서 보름동안 한국 대학생 18명과 자원 활동을 하기로 돼 있었다.
목걸이, 기념품 등을 파는 좌판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 ‘록빠’에 들어서자 페마, 남겔, 상모가 기자를 맞았다. 이들은 ‘록빠’ 운영자인데, 신기하게도 페마는 한국인이었다. 그녀가 7년 전 티베트 남자 잠양과 결혼 한 뒤, 다람살라에 무료 탁아소 록빠를 만든 것이다. 자신을 티베트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그녀는 기자에게도 티베트 이름을 선물했다. “하키(LHAKYI). 행복한 천사라는 뜻이야.” 하키. 설레는 이름이다. 기자는 티베트 아이들이 이 이름을 불러줄 순간이 기다려졌다.
다음날 아침 8시 30분. 드디어 탁아소의 하루가 시작됐다. 부모님의 손을 잡은 아기들이 아장아장 걸어왔다. 자원 활동가들은 긴장 속에 호기심 어린 눈빛 수십 개와 처음 마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예 밍 라 이시(내 이름은 이시에요).” 기자가 이해한 ‘이시’의 티베트어는 짧았지만 강렬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마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탁아소가 쉬는 주말에도 아이들을 위한 자원 활동은 계속됐다. 마을의 사원 앞에서 ‘록빠 벼룩시장’을 열기도 했다. 한국에서 기부한 헌 옷들을 정리해서 판매하고, 몇몇 자원 활동가들은 즉석 리코더 공연으로 기부금을 모았다. 지나가던 티베트 사람들이 흔쾌히 상자에 돈을 넣어 주었다. 얼마 후, 총 8000루피가 모였다. 잠깐의 땀방울이 ‘록빠’의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정성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히말라야를 넘는 사람들
‘록빠’에서 만난 아이들에게서는 자연스럽게 티베트 냄새가 났다. 생김새가 그러했고, 그들의 언어인 티베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단 한번도 티베트의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페마의 조카인 23살 청년 ‘켈상’ 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 점령당한 티베트의 현실. 그 고단한 삶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도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자에게 지나간 역사일 뿐인 아픔은 티베트 아이들에게는 현실이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티베트 땅에서 중국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티베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다.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이 곳, 다람살라에 정착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만난 요리사 ‘하모’ 아저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티베트 전통 요리를 배우러 간 요리 교실에서 그는 자신이 히말라야에서 겪은 한 달에 대해 이야기했다. “1990년에 국경을 넘기 위해 한 달동안 히말라야를 걸었지. 중국 군인에게 걸릴까봐 6일 동안은 음식 없이 동굴 안에 숨어있어야 했어.”
지금 이 순간에도 티베트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부모와 떨어져 혼자 국경을 넘는 어린 학생들도 포함돼 있다.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기꺼이 생이별을 감수한다. 학교에서는 티베트 고유의 언어나 문화, 정신을 무시하고 오직 중국의 사상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티베트 땅에는 티베트인을 위한 교육이 없다.

정체성 지키는 티베트식 교육
그렇게 히말라야를 넘은 아이들은 티베트 어린이 마을(Tibet children village, 이하 TCV)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할 수 있다. 기자는 ‘켈상’을 따라 다람살라의 TCV를 둘러볼 수 있었다. TCV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티베트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티베트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무엇보다 영어가 중요하다는 달라이 라마의 생각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만난 티베트 사람 대부분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또한 티베트는 교육을 통해 고유의 정체성과 가치를 보존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티베트인임을 잊지 않으며,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을 배우는 것,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이 TCV의 교육 목표라고 했다. ‘COME TO LEARN, GO TO SERVE' 기자에게는 운동장 한 가운데 새겨진 이 문구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한편 TCV 곳곳에서 일본어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이들을 응원하는 후원자들의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 후원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평화를 증명하는 길을 걷다
기자는 ‘록빠’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며 티베트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평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 이 단어가 어느 한쪽에서는 이렇게 꼭 필요한 단어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나 티베트는 세계 분쟁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테러리스트가 없는 나라다. 그들에게는 무기도, 군대도 없다. 달라이 라마는 오직 비폭력 독립운동만을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13억 중국 대륙에 맞선 티베트의 독립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더구나 티베트에서는 아무도 중국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2007년 티베트 사태 촛불 시위 중, 쓰촨성 지진이 일어나자 중국을 위해 3일 동안 기도회를 가진 것도 티베트 사람들이었다.
최근에는 티베트 독립운동의 대표적 구호인 ‘FREE TIBET’을 지양하고 ‘PEACE TIBET’운동을 펼치는 움직임도 있다. 만약 티베트 땅을 되찾는다면, 중국의 한족 이주정책으로 현재 티베트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을 몰아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말한다. “어떻게 티베트 땅에서 태어난 중국인 2세들을 쫓아내는 것이 평화적인가?”

티베트의 독립이 앞으로 50년이 걸릴 수도, 100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들이 가려는 길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훗날 ‘PEACE TIBET'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곧곧 평화를 증명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평화를 증명할 수 있을까.
자원 봉사 활동이 끝나갈 때쯤, 다람살라의 밤하늘이 맑게 갰다. 밤하늘에는 수천 개의 별이 쏟아질 듯 펼쳐졌다.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장관이었다. 기자는 별을 보며 아이들의 평화로운 얼굴을 떠올렸다. 이제 아이들은 티베트의 미래가 될 것이다.  기자는 다람살라의 밤하늘에 펼쳐진 별빛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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