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그리고 서거(逝去). 그 후 일주일이 지났다. 이 충격적인 소식 한가운데 던져진 대한민국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게 흘러왔다. 소식을 접한 국민들의 얼굴은 충격과 안타까움이 담긴 표정 그대로였다.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추측한 세간의 분석과 결론도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미 그는 떠났고, 죽은 사람은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를 추모하며 통합과 화해의 계기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로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이러한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첫 날, 서울시내에서는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시민들과 불법 시위를 우려한 경찰 간의 다툼이 불거졌다. 그의 빈소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특정 정ㆍ관계 인사에게 물을 끼얹으며 조문을 막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지금도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더 이상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이 차고 넘쳐난다.

사실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말하는 것은 통합ㆍ화해와 거리가 멀었다. 권력은 ‘돈’과 관련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고, 좌파ㆍ우파로 나뉜 이념 대립은 끝이 없었으며, 지역감정은 이러한 분열을 심화시켰다. 누군가는 사(私)적인 잣대로 편을 갈라 서로를 헐뜯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통합ㆍ화해를 위한 노력은 더욱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정치가 더 이상 편을 나눠 싸우는 것이 당연한, ‘그들만의 세상’이어야 할까.

정치는 싸움과 분열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가 지닌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정되면서 ‘정의’를 말하는 이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는 다 똑같다’라며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면 이 같은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편견에서 벗어난 건설적인 소통이 절실하다.

죽음의 의미는 죽음을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비록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이 당황스러울지라도, 그의 죽음을 겪고 난 이후의 대한민국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세상과 작별을 고한 그에 대한 안타까움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유연한 사고, 관심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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