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이 한참 이루어지던 80년대에는 문학의 위상이 크고 독자에 대한 영향력도 강한 시기였다.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 또한 사회참여의식이 높아졌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여성시인 고정희(1948-1991)는 70년대 중반 문학계의 큰 주목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녀는 왕성한 문학 활동을 했고, 70-80년대 한국여성운동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91년, 그녀의 나이 43세에 지리산 등산 중 실족사로 생을 마감한다. 한국여성문학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녀. 고정희 시인의 생애와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여성주의’ 그리고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여성계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고정희는 ‘시인 마을’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스무 살 무렵까지 이곳에서 문학인으로서 희망과 꿈을 키웠다. 현재 전라남도 해남군에서는 고정희의 생가를 관광지로 지정해 해남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이곳을 개방하고 있다. 

고정희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와 기자를 거쳐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다. 또한 등단 이후 그녀는 한동안 ‘목요회’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고정희 시인은 1979년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발간에 이어『여성해방출사표(1990)』등 10권의 시집을 냈다. 그리고 그녀가 사망한 뒤 유고시집인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발간 된다.

 

'여성주의 시' 여성해방을 목표로

1983년도에 발표된 <이 시대(時代)의 아벨>이라는 시에서 그녀는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시에서는 무고한 동생 아벨을 죽인 형 카인을 통해 인간의 타락과 죄악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난다. 이 시의 해석을 두고 문학계는 동생을 죽인 ‘비인간적’인 카인에 당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던 군사정권을 빗대어 비난했다고 본다.

고정희의 일부 시 작품들은 80년대 최대의 화두였던 민주화를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확연히 두드러지는 시 성향은 바로 ‘여성주의’였다. 그녀의 시 작품 대부분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를 문학계에서는 “한국 페미니즘 문학계에 지평을 넓혔다”라고 할 정도로 고정희 시인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한다.

고정희 시인은 등단 이후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역사성’을 강조했다.그리고 그녀는 10여 년 동안 한국 가정과 사회 속 여성의 억압을 거부하는 저항을 토해냈으며, 여성 스스로 주체성을 일깨워 ‘여성해방’을 이룩해야함을 주장했다. 시의 내용뿐만 아니라 시적 표현에서도 그녀의 '여성주의'의식이 반영됐다.

‘치맛자락 휘날리며 휘날리며/우리 서로 봇물을 트자 (중략) 할머니의 노동을 어루만지고/어머니의 보습을 씻어주던/차랑차랑한 봇물을 트자/눈 먼 삼년 세월 봇물을 트자(후략)’

위의 시 <우리 봇물을 트자>에서 고정희 시인은 ‘트자’라는 술어를 반복했는데, 이는 세대 간 그리고 여성 상호간 서로 격의 없이 소통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즉, 여성들이 소통을 통해 여성들이 함께 여성해방의 길에 동참하는 '여성연대'를 만들자는 취지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 학교 구명숙(국어국문학 전공)교수는 “그녀의 시는 여성들을 고무시키기 위해 굉장히 구호적인 언어표현을 사용했다”라며 고정희 시 작품들의 언어적 특성을 설명했다. 구 교수는 “고정희의 시 작품이 페미니즘 운동의 실천적 면모를 고스란히 시에 표출해 여성의식을 일깨웠다는 평가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저항적ㆍ투쟁적ㆍ고발적 시어는 다소 ‘언어적 미’를 상실했다는 일부 문학계의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구 교수는 “그녀가 여성문학과 더불어 등단초기에 보여줬던 서정성을 다시 추구하려던 시기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그녀가 이루려던 폭넓은 시적 세계를 상상해 볼 뿐이다”라고 하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여성운동의 중심에서 그리고 '또 하나의 문화'

80년대 김지하, 김남주와 같은 시인들이 시를 통해 민중과 소통하고 민주화를 운동을 주도했듯이 그녀도 여성운동에 중심에 서있었다. 그녀는 지난 1988년 창간 된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 등을 지내며 한국여성운동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그녀는 1984년 절친한 벗인 조한혜정을 포함한 여러 사회학자들과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라는 동인을 창립하기에 이른다. 이 단체는 지금까지도 여성운동의 맥을 이어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과 여성과 관련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덧붙여 또문에서는 여성·가족·청소년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룬 여성운동가들의 글을 모아 지난 20여 년간 동인지를 꾸준히 출간해오고 있다.

또한 지난 2004년부터는 여러 여성단체들의 후원으로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이하 고정희 문학상)’이 (사)또문을 통해 개최되고 있다. 올해 제 6회 대회에서는 지난 6월에 지역예선을 거쳐 선발된 40명의 청소년들이 본선을 치뤘다. 본선은 고정희 시인의 고향인 해남에 위치한 사찰 ‘미황사’에서 시행됐다. 이들은 본선을 치른 후, ‘여성주의’와 고정희 시인에 대한 강연으로 구성된 2박 3일의 캠프에 참가했다.

 

고정희 시인을 중심으로 모여 새로운 문화 공동체 만들어

'또문'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 대회에 매년 200여 명 규모로 전국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매년 참가 인원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이 대회의 시제는 이 문학상을 계기로 만나 문화작업을 하는 ‘고글리(고정희를 추모하는 청소년 문화모임인)’에서 선정한다. 다른 문학상과는 다르게 '고정희문학상'에서는 <아르바이트><이효리와 강금실 그리고 힐러리>등 특색 있는 시제로 문학대회를 진행한다. 심사기준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에 얼마나 공감을 하고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관건이다. 올해 본선 심사위원으로는 장정임(시인), 이은주(문화평론가), 김현아(여성신문편집위원) 그리고 이진명(시인)으로 구성됐다.

올해 대회에서 여성신문상을 수상한 송혜주 학생(동명여고, 2)은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고된 페인트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희망을 꿈꾸는 어머니의 모습을 <길 위에서>라는 작품으로 그려냈다. 송혜주 학생은 “이번 대회를 통해 고정희 시인을 알게 돼 좋았고,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라며 앞으로 문예창작 쪽으로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하나의 문화 소속 이영주 사무국장은 “이 대회는 10대가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이 담긴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장이다”라고 말하며 고정희 문학상의 의의를 설명했다. 또 “다른 문학상과는 달리 전년도에 문학상에 참여한 10대가 문학상을 준비하는 스텝으로 활동한다”라며 ‘고정희 문학상’을 통해 새로운 문화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음을 전했다.


고정희 시인은 문학 활동과 여성운동을 통해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죽은 이후도 그녀의 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처럼 여성주의를 위한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주의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녀의 시 작품들과 치열했던 여성운동의 발자취는 최근 가족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 찾기'와 같은 고민에 빠진 이 시대의 여성에게 용기를 북돋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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