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 관계를 매개로 크고 작은 다양한 사회에 속하게 된다. 1차적으로는 부모ㆍ자식 등 가족관계로 맺어진 가정, 사제지간을 중심으로 맺어진 학교, 넓게는 국가, 나아가 전 인류까지도 모두 ‘관계로 맺어진 사회’이다. 따라서,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원형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그 사회에 속한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이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우리 주변의 계층간ㆍ이념간ㆍ지역간ㆍ세대간 갈등과 대립ㆍ분열 현실은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별로 없음을 웅변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이런 현실을 우려하며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으나, 단시간 내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그 해답을 내가 속한 사회에서의 본연의 관계 회복을 위한 나 자신의 작은 노력에서 찾고 싶다.
우선,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되 소유의식은 버리자. 내 가정이 가장인 나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족들은 나의 노예가 되고, 학생만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수는 스승이 아니라 학생인 나의 시종이 되고 만다. 가정이나 학교사회 본연의 관계가 비틀리고 왜곡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가정의 주인임을 잊는 순간 가족관계는 해체되고, 내가 학교의 주인임을 잊는 순간 교정은 버려지는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뒤덮이고 숙명여대는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주인의식은 갖되 소유의식을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나의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해지자.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인식한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력은 자신의 욕망에 좇아 종종 왜곡되곤 한다. 나의 기억과 판단도 틀릴 수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나의 기억과 다른 ‘사실’을 얘기하는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거나, 나와 판단을 달리하는 그가 어리석거나 비겁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나의 태도는 그와의 소통을 단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명분이 옳다 하더라도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자. 감정은 이성보다 강하고, 유리처럼 깨치기 쉬우며, 한 번 깨지면 원형을 회복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작은 실천이 우리의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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